리지 경제학

세상의 흐름

수출 58% 번 엔지니어...이스라엘 전비 떠받친 외바퀴 수레

달러 벌어들인 10%의 첨단 기술...나랏빚 70%와 하레디 징집 거부의 뇌관

리지

전시 경제5분

Illustration by Gemini

흙길 위를 달리는 외바퀴 수레는 짐이 가벼울 때는 좁은 골목도 거침없이 빠져나가고 바퀴가 하나뿐이라 방향을 바꾸기 쉽고 가파른 비탈길도 가볍게 오른다.

그러나 물건을 싣는 수레 적재함에 무거운 철근과 자재가 차오르면 손잡이를 쥔 사람의 팔은 떨리기 시작한다. 그 무게가 바퀴 하나에 전부 쏠리기 때문이다.

전쟁 3년 차에 접어든 이스라엘 경제가 지금 그 수레를 닮았다. 전면전이 1년 넘게 이어지는 속에서도 이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멈추지 않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여전히 텔아비브로 몰려든다.

이 호황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기이한 사실 하나가 나타난다. 수출의 58%를 벌어들이고 소득세의 3분의 1을 내는 사람은 전체 일자리의 10%에 불과한 첨단 기술 인력이다.

텔아비브의 연구원들이 컴퓨터 화면을 마주하며 벌어온 달러가 전선의 포탄 대금을 대고 국가 부도 위기를 막아내고 있다. 거대한 전쟁 비용 전체가 단 하나의 바퀴 위에 얹혀 있다.

통상 전쟁은 국가 재정을 고갈시키고 생산을 중단시키며 공장이 포격을 맞고 청년들이 전선으로 징집되면 성장은 마이너스로 추락하는 것이 교과서의 상식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 이스라엘 정부의 기술 진흥 기관인 이스라엘 혁신청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첨단 기술 부문은 실질 기준으로 8.2% 성장했고 국가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역대 최고인 18.3%까지 올랐다.

이 부문에서 벤처 투자 유치액은 150억달러에 육박했고 기업 매각 규모는 840억달러를 기록했다. 인공지능 기반 지휘 통제망과 감시 정찰 시스템이 전선에서 실전 검증을 거치며 방산 수출액은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반세기 전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1973년 10월 욤키푸르 전쟁이 터졌을 때 이스라엘은 국가 역량 전부를 군대에 쏟아부어 당시 국방비 지출이 GDP의 30%를 넘어섰고 그 대가는 혹독했다.

전쟁이 끝난 뒤 찾아온 것은 세 자릿수 초인플레이션이었고 10여 년 뒤 물가상승률은 445%까지 치솟았으며 외환보유액은 바닥을 드러냈다.

국가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이스라엘은 이듬해 긴급 경제안정화 계획을 단행했다. 1990년대 소련 해체로 유입된 100만 명의 기술 인력을 밑거름 삼아 산업 체질을 완전히 개편했다.

이어 정부가 출자해 세운 벤처 자본 요즈마(Yozma) 펀드가 오늘날의 "스타트업 네이션"을 낳았다.

그 30년의 성취가 전면전에서 기묘한 완충재 역할을 하면서 모든 국민이 공장에서 포탄을 깎는 전시 총력전은 벌어지지 않았다. 텔아비브 유리 빌딩 안에서 알고리즘을 짜고 반도체를 설계하는 40만 명의 엔지니어가 전 세계에서 달러를 벌어들여 국가를 지탱한다.

이 40만 명이 기록한 연간 850억달러의 수출 실적이 통화 가치 폭락을 막았고 월급에서 원천징수된 세금이 국고로 들어갔다. 군인들은 미국산 미사일을 쏘지만 그 미사일을 구매할 신용을 세계 금융시장에서 조달한 곳은 텔아비브의 첨단 기술 기업들이었다.

문제는 외바퀴 수레 적재함에 실리는 짐의 무게가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 중앙은행 집계에 따르면 전쟁 전 GDP의 5% 안팎이던 국방비 지출은 최근 8%대로 뛰어올라 한 해 국방비로만 480억달러 안팎이 투입된다.

이 지출 탓에 재정적자는 GDP의 6.9%까지 벌어졌고 공공부채 비율은 전쟁 전 60.5%에서 68.6%로 올랐다. 정부는 예비군 30만 명을 소집하고 가자지구와 레바논 전선에 화력을 집중하며 국채를 발행했다.

겉으로는 기술 혁신이 나라를 지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기술 기업의 대외 신인도를 담보로 미래 세대의 빚을 당겨 쓰는 구조다.

더 깊은 균열은 사회 내부의 인구 구조에서 나타나고 있다. 바로 초정통파 유대교 신앙 집단인 하레디다.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13.5%를 차지하는 하레디는 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이 6.5명에 달해 머지않아 인구의 3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하레디 남성의 46%는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채 전통 종교학교인 예시바에 머물며 국가 보조금으로 생활한다.

이 취업률은 일반 유대인 남성의 취업률 85%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데다 이들은 건국 이래 군 복무조차 면제받아 왔다.

지난해 6월 이스라엘 대법원이 만장일치로 하레디의 징집 면제에 위헌 판결을 내리고 관련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라고 명령했을 때 사회적 갈등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전선에서 희생되는 일반 청년들과 예비군들은 공정한 병역을 요구했다.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연립정부는 하레디 정당들의 지지 없이는 정권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이 정부는 징집 영장 발부를 미루고 우회 경로를 통해 종교학교 보조금을 유지하는 법안을 추진했다. 총을 들고 세금을 내는 국민과 총을 들지 않고 보조금을 받는 국민 사이의 사회적 계약이 무너졌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극단적으로 양분된 나라가 됐다. 한쪽에는 실리콘밸리와 직접 연결되어 달러를 버는 10%의 기술 엘리트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징집과 납세에서 벗어난 채 보조금에 의존하는 거대한 종교 집단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끼여 징집과 고물가에 시달리는 전통 서비스업과 자영업자들이 있다. 관광 산업은 외국인 발길이 끊기며 침체에 빠졌고 건설 현장은 팔레스타인 노동자 추방 이후 멈춰 섰다.

이처럼 내수 경기가 침체하는데도 거시경제 지표가 호조를 나타내는 까닭은 텔아비브의 수출 실적이 다른 모든 하락세를 통계적으로 가려주고 있어서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전쟁이야말로 방산 인공지능과 무인기 보안 기술의 가장 강력한 시험대이며 실전에서 효용이 입증된 기술에 글로벌 자본이 유입되고 있으므로 이는 건강한 구조적 도약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의 주요 벤처 펀드들은 텔아비브 신생 기업들에 기록적인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이들은 전쟁이 부른 안보 위기가 오히려 기술 경쟁력의 진입 장벽을 높여주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주장은 기술을 개발하는 인력의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 이스라엘 혁신청 실태 조사를 보면 첨단 기술 인력의 약 15%가 예비군으로 차출되어 연구실을 비웠다.

스타트업 핵심 인력 세넷 가운데 하나가 전선에 나가 있는 동안 연구개발 프로젝트는 중단되고 납기는 지연됐다. 더 심각한 징후는 올해 들어 나타났다. 이스라엘 내부의 연구개발 일자리 수가 10년 만에 처음으로 순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이 불안 탓에 창업자들은 본사와 지식재산권을 미국 델라웨어나 런던으로 이전하는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실전 데이터가 축적되는 속도보다 위기감을 느낀 인재가 유출되는 속도가 더 빠르다.

텔아비브의 상황은 먼 나라 일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의 경제 구조 역시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한국 또한 전체 취업자의 5%에도 미치지 못하는 반도체와 전자, 자동차 등 소수 첨단 제조업 대기업이 전체 수출의 60% 이상을 담당하고 법인세수의 30% 안팎을 채운다. 지난달 무역수지가 반도체 호조에 힘입어 230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고 평가하지만 고용 창출은 오히려 위축되고 내수 자영업은 한계 상황에 내몰렸다.

이 취약한 구조 위에 안보 부담이 얹히고 있다. 합계출산율 0.72명이라는 인구 절벽 속에서 상비군 50만 명 유지선은 이미 붕괴했다.

병역 자원이 고갈되자 정부는 예비군 훈련을 강화하고 복무 제도를 손질하려 하지만 병역 부담은 여전히 20대 남성 특정 계층의 희생에만 의존하고 있다. 내년도 국방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73조원을 돌파할 예정이다.

첨단 무기를 도입할 재원은 수출 대기업 세수에서 나오고 그 무기를 운용할 청년 숫자는 가파르게 줄어든다. 일하는 소수에게 국방과 세수를 전담시키고 늘어나는 고령화 복지 비용을 국가채무로 충당하는 구조는 이스라엘이 겪는 모순과 흡사하다.

이 위태로운 행보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독자는 향후 발표될 세 가지 지표를 통해 이 진단을 스스로 검증할 수 있다.

첫째는 이스라엘 혁신청이 분기마다 집계하는 국내 연구개발 인력 고용 동향이다. 이 숫자가 반등하지 못하고 감소세를 이어간다면 기술 기반의 균열은 피할 수 없다.

둘째는 미국 국채 대비 이스라엘 국채의 가산금리다. 금융시장이 이스라엘의 부채 감당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국채 스프레드는 급격히 확대된다.

셋째는 이스라엘 중앙통계국이 발표하는 하레디 남성의 취업률이다. 이 숫자가 50%대 초반에 머물러 있는 한 내부 재정 누수는 멈추지 않는다.

수레 적재함에 실린 짐이 무거워질수록 외바퀴 수레의 균형은 흔들린다. 바퀴가 하나뿐인 수레는 속도를 내어 달릴 때는 넘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멈춰 서는 순간 어느 한쪽으로 쓰러진다.

텔아비브의 첨단 기술이라는 단 하나의 바퀴에 전비와 복지, 국가 존망을 얹어둔 채 달려온 이스라엘의 바퀴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올해 상반기 이스라엘 신생 기술기업의 40% 이상이 법인 설립지를 해외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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