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흐름
튀르키예가 펀드 가입 문턱을 열 배로 올렸다...먼저 들어온 45만 명은 예외
2013년 관보에 적힌 100만 리라는 46만 달러였다가 2만 3,000달러로...청산 명령을 받은 131개 펀드에 개인 46만 명
이스탄불의 은행 창구에서 펀드에 가입하려는 사람은 서류 한 장에 서명한다. 판매사가 그 서류를 받아 보관해야 하고 판매 직원이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게 해야 한다고 튀르키예 투자펀드 고시 25조가 정해 두었다. 그 종이에 적힌 것은 서명한 사람의 금융자산이 튀르키예 통화로 100만 리라를 넘는다는 사실 하나다. 투자 경험이나 직업은 묻지 않는다.
이 서류가 열어 주는 자격의 이름이 적격투자자다. 튀르키예의 자본시장 규제기관인 자본시장위원회가 2013년 관보에 투자펀드 고시와 투자기관 고시를 실으면서 만든 투자자 분류로, 일반 투자자에게는 팔 수 없는 상품을 따로 열어 주려고 둔 칸이다.
100만 리라라는 금액은 2013년 12월 관보에 실린 고시에 적혀 있다. 현금 예금과 보유한 자본시장 상품을 합친 금액이 이 선을 넘으면 적격투자자가 된다. 적격투자자는 위험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고 보아 일반 투자자에게 팔 수 없는 상품까지 살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 고시는 조건을 셋 적어 두었다. 그 셋은 분기마다 50만 리라씩 열 번 이상 거래한 이력, 금융자산 100만 리라, 금융권 고위직 경력이나 파생상품 자격증이다. 전문고객이 되려면 이 가운데 둘을 채워야 하는데, 적격투자자는 금액 조건 하나만 채우면 된다고 같은 조항의 3항이 따로 정해 두었다.
문턱이 처음 적힌 날 100만 리라는 큰돈이었다. 2013년 12월 31일 튀르키예 중앙은행이 고시한 환율은 1달러에 2.1304리라다. 100만 리라를 그 환율로 바꾸면 46만 9,000달러다.
그 뒤 12년 동안 이 한 줄은 그대로 있었다. 리라는 그대로 있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31일 중앙은행 고시 환율은 1달러에 42.8457리라로, 100만 리라가 2만 3,000달러다. 문턱은 스무 분의 1로 낮아졌다.
문턱 안에 무엇이 있는지가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적격투자자에게만 팔 수 있는 상품 가운데 포트폴리오 제한을 아예 받지 않는 펀드가 있다. 튀르키예에서 serbest fon이라 부르는 것이다.
투자펀드 고시 25조 1항은 이 펀드가 "이 고시 17조부터 24조까지의 포트폴리오 및 거래 제한을 받지 않고" 투자할 수 있다고 정했다. 한 종목에 자산의 몇 %까지 담을 수 있는지, 한 회사가 발행한 주식을 총수의 얼마까지 살 수 있는지를 정한 조항이 모두 그 구간에 들어 있다.
기준가격을 알리는 주기도 다르다. 25조 9항은 이 펀드가 기준가격을 한 달에 한 번만 계산해 투자자에게 알려도 된다고 정했다. 무엇을 얼마로 담고 있는지 매일 확인할 수 없는 펀드에, 금융자산 100만 리라를 증명한 개인이 들어간다.
적어야 할 것도 적다. 25조 14항은 이 펀드의 투자설명서에 세 항목만 넣고 비교 기준과 운용보수율 같은 나머지는 공시 페이지에 올리면 된다고 정했다.
돈을 되돌려 받는 쪽은 더 오래 걸린다. 25조 11항은 이 펀드가 환매에 걸리는 기간을 기준가격을 알리는 주기보다 길게 정할 수 있다고 정했다. 들어갈 때 필요한 것은 종이 한 장인데 나올 때 걸리는 시간은 운용사가 공시에 적어 둔 대로다.
튀르키예 자본시장위원회(SPK)는 문턱이 낮아진 것을 알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18일 위원회는 원칙결정을 내려 금융자산 기준을 100만 리라에서 1,000만 리라로 올렸고, 거래 이력 기준도 50만 리라에서 500만 리라로 올렸다.
그런데 결정문에는 문장이 하나 더 있다. 위원회는 올린 금액이 "처음으로 전문고객 또는 적격투자자가 될 고객"에게 적용된다고 적었고, 결정을 공표하기 전에 그 자격을 얻은 고객은 "이 자격이 계속된다"고 이어 적었다. 판매사가 고객 자격 서류를 보관하는 창구 서류철에 이미 들어간 종이는 그대로 효력을 지녔다.
아홉 달이 지났다. SPK는 17일 자산운용사 7곳이 설립한 펀드 131개의 청산을 결정했다. 23일 위원회가 공표한 이 펀드들의 개인 투자자 수는 45만 5,758명이다.
위원회는 17일자로 이 운용사들이 설립해 펀드 판매 플랫폼에서 거래되던 펀드의 매매도 정지시켰다. 서류 한 장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그 펀드를 팔 수도 살 수도 없게 됐다.
누가 얼마를 돌려받는지는 주문을 낸 시각이 갈랐다. 위원회는 28일 공표에서 9월 16일 오후 1시 30분이 지나 플랫폼에 들어온 주문은 이튿날 취소됐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주문이 취소된 투자자는 "펀드 내 지분 비율에 따라" 청산 대금에서 받는다고 적었다.
이 일을 시세조종 사건으로 읽는 쪽이 있다. 청산 대상이 된 곳은 운용사 일곱이다. 문턱을 열 배로 올려 두었더라도 값을 끌어올리는 사람은 있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맞는 말이다.
문턱을 높이는 일에도 대가가 따른다. 물가가 빠르게 오르는 나라에서 문턱을 올리면 예금보다 나은 곳에 돈을 둘 선택이 그만큼 줄어든다.
그래도 문턱은 사기가 닿을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정한다. 45만 5,758명이 포트폴리오 제한 없는 펀드 안에 있었던 것은 규정이 이들을 "스스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고 부담하는 위험을 평가할 수 있는 경험과 지식과 전문성을 갖춘 고객"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그 분류를 받는 데 필요한 것은 금융자산 100만 리라다. 지난해 말 그 금액은 2만 3,000달러였다.
한국은 이 문턱을 다르게 적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8월 초 낸 보고서에서 국내 레버리지 상품의 순자산이 6월 말 39조 4,000억원으로 2016년 말의 13.1배가 됐다고 집계했다. 2016년 말부터 올 6월 말까지 연평균 증가율은 31.1%로, 해외 레버리지 상품의 증가율 약 15%의 두 배였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7월 말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투자자별 기본 예탁금을 1,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올렸다. 금액만 올린 것은 아니다. 금융투자교육원에서 받는 온라인 교육 시간이 3시간으로 늘었고, 8월 19일부터는 한국거래소 홈페이지에 접속해 하루 1시간씩 5거래일간 모의거래를 이수해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개인 일반투자자가 "모의거래를 이수해야 상품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조치의 결과는 지수에 남았다. 한국거래소의 코스피200 변동성지수는 예탁금을 올리기 전날 86.18이었다가 8월 14일 55.31로 마감했다. 35.8% 내렸다. 금융투자협회 집계로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친 하루 강제 청산 금액은 1,000억원을 넘던 데서 50억원으로 줄었다.
5거래일과 5시간은 물가가 깎지 못한다. 금액으로 적은 문턱만 해마다 낮아진다.
절차를 문턱으로 삼는 쪽으로 한국은 한 발 더 갔다. 금융감독원이 마련한 펀드 핵심위험 표준안은 30일 시행되는데, 해외 부동산펀드와 레버리지·인버스 펀드 등 10개 유형의 공모펀드를 새로 내놓을 때는 투자자가 먼저 볼 위험을 4개로 압축해 적고 과거 20%를 넘는 손실이 난 적이 있으면 그 규모까지 밝혀야 한다.
다음 분기에 볼 것은 두 가지다. SPK가 1,000만 리라를 다시 손댈 때 그 금액을 물가에 연동하는지, 그리고 금융감독원이 표준안을 적용하는 유형을 공모펀드 10개 밖으로 넓히는지다.
이스탄불 창구의 서류철은 여전히 금액 하나를 증명하는 종이로 채워진다. SPK가 새로 적은 금액은 1,000만 리라다. 25일 중앙은행 고시 환율로 20만 5,000달러다. 2013년 12월 31일의 100만 리라는 46만 9,000달러였다.
이 글이 어땠나요?
눌러 주시면 다음 글을 쓸 때 소중한 참고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