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흐름
법인세 216조 쏟아지는데 지방은 아우성...AI 붐이 옥죄는 국가 재정
반도체 호황에 법인세 비중 37%로 치솟지만...교부세 30조 삭감에 흔들리는 조세 기반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과 시도지사 12명은 국회 본관 회의실에서 정부 서류를 앞에 두고 거친 말을 주고받았다. 기획예산처가 발표한 200조원 규모 미래대응기금 신설안에 반발한 것이다. 몇 해 전 세수 결손 때 지방정부는 적립금을 헐며 버텼다. 이제 반도체 호황으로 세금이 쏟아지는데, 정부가 기금으로 돈을 떼어내 지방교부세 약 30조원을 깎겠다고 통보하자 광역단체장들이 거세게 맞섰다.
지표만 보면 축제의 한복판이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면서 내년 한국의 법인세 수입은 216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정부가 거두는 전체 국세 수입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37%로 뛴다. 정부는 장기 추세를 웃도는 이 세수를 따로 떼어내 200조원 규모 기금을 조성하고, 프런티어급 AI 개발과 전력망 구축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공언했다.
노동의 장부에서 빠져나가는 조세 기반
세수가 넘쳐나는데 지방정부의 재정이 먼저 마르는 현상은 단순한 예산 갈등이 아니다. 인공지능 혁명이 20세기 복지국가를 지탱해 온 조세 계산대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현대 조세 체계는 근로자의 급여 장부 위에 세워졌다. 근로자가 받는 월급에서 소득세와 사회보험료를 원천징수하는 방식은 국가가 흔들리지 않고 공공 서비스를 운영하게 만든 제도적 바탕이었다.
지금도 직장인이 내는 세금이 선진국 정부 세입의 절반을 채운다. OECD 회원국의 조세 수입에서 개인소득세와 사회보장기여금을 합친 비중은 절반을 넘지만 법인세 비중은 10%대에 그친다. 과거 닷컴 혁명 때는 기술 발전이 사무직 일자리를 늘려 국가 재정을 채웠다. 기술이 일자리를 만들고 일자리가 세금을 낳아 재정을 불리는 선순환이었다.
그러나 생성형 인공지능은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이번 기술 혁명은 인간의 지능 노동을 대체하고, 사람 대신 그래픽처리장치와 전력을 대량으로 소모한다. 기업이 인건비를 줄이고 연산 자원에 투자할수록, 국가가 가장 안정적으로 세금을 걷던 일자리 기반은 축소된다.
공기업 빚으로 깔리는 AI 고속도로
AI 기업에서 법인세를 거두면 된다는 낙관론은 이 세목의 변동성을 간과한다. 법인세는 경기 순환에 극도로 민감하게 출렁이는 탓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에 따라 국가 재정 전체가 큰 위험에 노출된다. 게다가 기업이 인프라 설비투자를 쏟아부을수록 세액공제와 감가상각 혜택이 늘어나 장부상 이익이 사상 최고치여도 국세청에 들어오는 세금은 줄어든다.
진짜 재정 위기는 AI가 국가에 들이미는 막대한 인프라 청구서에서 터져 나온다. 기가와트급 전력망과 송전선로는 민간이 아닌 공공의 빚으로 지어진다. 한국전력 누적 적자가 43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첨단 반도체 클러스터 송배전망 확충에만 56조원의 투자가 요구된다. AI 인프라의 과실은 테크 기업들이 가져가지만, 이들이 쓸 전선과 발전소를 까는 빚은 공공 부문이 떠안는 구조다.
국회 회의실에서 터져 나온 시도지사들의 반발은 지방의 이기주의가 아니다. 사람의 월급에서 뗀 안정적인 세금으로 복지를 굴려오던 조세 국가가, 사람을 쓰지 않고 전력과 보조금만 요구하는 인공지능 자본을 맞아 겪기 시작한 구조적 균열이다. 정부가 지방교부세를 깎아 첨단 산업 기금으로 돌리려는 선택도 이런 재정적 딜레마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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