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흐름
13% 유아기 투자 헐어 주식 샀다...요람에 묶인 미성년 자산 7.3조
미성년 주주 77만명과 비과세 증여 열풍...30대 유동성 잠그고 인적 자본 갉아먹는 역설

돌잔치 사진 한구석에서 아이가 동전을 모으던 저축 수단인 빨간 플라스틱 돼지저금통이 사라졌다. 그 자리를 생후 백일도 되지 않은 아이 이름으로 개설된 증권사 위탁 계좌가 차지했다. 아이가 제 발로 걷기도 전에 미국 나스닥 지수나 대형 반도체 주식을 사 모으는 일은 이제 젊은 부모들 사이에서 육아의 기본 상식이 됐다.
미성년 주식 계좌는 2023년 금융당국이 스마트폰을 통한 비대면 개설을 허용한 뒤 부모가 자녀의 조기 자산 형성과 비과세 증여를 목적으로 개설하는 증권 위탁 계좌를 가리킨다.
한국예탁결제원 통계를 보면 국내 상장사 주식을 보유한 미성년 주주는 지난해 말 기준 76만9624명에 달한다. 2019년 9만8612명에서 불과 6년 만에 8배 가까이 늘었다. 이들이 보유한 주식 평가액은 7조3113억원으로 1년 만에 57.2% 증가했다. 2023년 금융당국이 스마트폰 비대면 계좌 개설을 허용한 뒤 증권사들이 쏟아낸 마케팅과 맞물려 미성년 투자는 빠르게 확산했다.
자산의 크기는 영아기부터 갈린다. 주식을 1억원 이상 보유한 미성년자는 5400명으로 1년 새 2배 가까이 늘었다. 열 살 미만 아동이 보유한 주식만 1조8355억원(25.1%)이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연간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넘어 종합소득세를 신고한 미성년자가 1606명이었고, 이 가운데는 첫돌을 갓 넘겨 배당과 이자로만 연 3940만원을 거둔 한 살배기 아동 5명이 포함됐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한국 부모가 자녀의 미래를 준비하는 방식은 전혀 달랐다. 소를 팔고 논을 처분해 대학 등록금을 대던 시절 부모는 오직 아이의 인적 자본만을 믿었다. 공부를 시켜 대학에 보내고 안정된 직장에 취직시키는 것이 가난을 벗어나 계층을 상승시키는 가장 확실한 길이었다. 가계의 모든 여유 자금은 아이의 지식을 쌓는 교육비로 집중됐다.
그 통로는 부모 세대의 눈앞에서 막혔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가 성실히 월급을 모아도 수도권에 아파트 한 채 마련하기 힘든 현실을 30대 부모들이 마주했다. 통계청 조사에서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7조1000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지만 학벌이 보장하는 소득 프리미엄은 급격히 줄었다. 노동소득이 자본소득의 증가 속도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는 좌절감이 출생 직후부터 아이 명의로 투자하는 조기 금융화로 이어졌다.
세법도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했다. 미성년 자녀에게 10년마다 2000만원까지 세금 없이 증여할 수 있는 공제 제도가 발판이 됐다. 출생 직후 2000만원, 열 살에 2000만원을 증여하고 미국 지수 추종 상장지수펀드(ETF)에 장기 투자하면 스무 살 성인이 될 때 억대 자산을 마련해줄 수 있다는 계산법이 육아 커뮤니티의 기본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아기를 위한 투자에 얽힌 복잡한 상충관계라는 분석에서 이 세계적인 조기 투자 열풍의 계산법을 짚었다. 신생아에게 1000달러를 주식에 투자하고 연평균 실질 수익률 5.2%를 거둘 경우 아이가 80세가 됐을 때 그 자산은 5만8000달러로 커진다. 58배에 달하는 복리 효과다.
하지만 이 계산 뒤에는 심각한 상충관계가 도사리고 있다. 부모의 생애주기에서 30대는 소득 대비 주거비 대출 상환과 양육비 지출이 겹쳐 유동성이 가장 부족한 시기다. 지금 당장 가족의 생활을 지탱해야 할 자금을 20년 뒤의 자녀 계좌에 묶어두면 가계에서 소득 여력이 가장 적은 시기의 부모가 미래의 성인 자녀에게 자금을 미리 이전하는 자원 배분의 왜곡이 일어난다. 현재의 궁핍을 감수하고 미래의 여유를 마련하는 구조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금융 자본을 쌓느라 아이의 인적 자본 투자를 줄이게 된다는 점이다. 2000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유아기 인적 자본 연구에 따르면 조기 투자의 효과는 확연하다. 출생부터 다섯 살까지 아동의 건강, 정서적 안정, 언어 자극, 양육 환경에 투입된 자원의 사회적 수익률은 연평균 13%에 달했다.
유아기 인적 자본 투자 곡선이 보여주듯 인간의 인지와 정서 발달은 생애 초기에 가장 급격히 이뤄지며 이때 형성된 비인지적 역량은 성인기의 소득과 생산성을 결정한다. 어떤 글로벌 인덱스 펀드도 13%의 안정적인 실질 수익률을 장기적으로 보장하기 어렵다. 아이 계좌의 잔고를 불리려 부모가 과도한 노동에 치여 정서적 교감을 줄인다면 연 13% 수익률의 인적 자본을 줄여 연 5% 수익률의 금융 상품에 투자하는 셈이 된다.
제도적 선례가 있는 서구의 경험에서도 한계가 드러난다. 영국이 2005년 도입했던 아동신탁펀드(CTF)와 주니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JISA)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부와 부모가 18년간 자금을 납입했지만 정작 성인이 된 청년 수십만 명은 자신의 계좌가 개설된 사실조차 알지 못해 수조 원의 자산이 휴면 계좌로 방치됐다. 자금을 인출한 청년들 역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목돈을 손에 쥐면서 소비성 지출로 소진하는 사례가 이어졌다.
성인이 되는 시점에 발생할 자산 관리 분쟁도 불가피하다. 부모는 학비나 주거 자금으로 쓰이길 바라며 20년간 모아왔지만 법적으로 성인이 된 자녀가 미성년 주식 계좌의 완전한 처분권을 갖는다. 금융 이해력이 형성되지 않은 청년에게 쥐여진 목돈은 투기성 거래나 무분별한 소비로 사라지기 쉽다. 이미 국내 증권사 10곳의 20세 미만 신용거래융자 잔액이 53억원에 달하고 6월 한 달간 증권사의 반대매매 강제처분액이 2억원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조기 투자가 올바른 금융 관리 능력을 저절로 키워주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더불어 조기 자산 증여는 세대 내 불평등을 초기부터 심화시킨다. 2000만원의 자금을 10년마다 지원할 수 있는 상위 계층의 자녀는 출발선에서부터 자본 소득을 얻지만 다수의 평범한 청년은 학자금 대출 채무를 안고 사회에 진출한다. 국가가 자산 형성을 지원하겠다며 제공하는 미성년 비과세 제도가 부의 대물림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반론도 제기된다.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일자리를 위협하고 잠재성장률이 1%대로 하락하는 환경에서 자녀에게 노동소득에만 기대라고 요구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부모가 제공할 수 있는 안전장치는 자본 시장의 자산을 조기에 배분하는 것이며 복리 효과는 투자 기간을 길게 확보한 아동일수록 극대화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자본을 운용하려면 자본을 다룰 주체가 먼저 역량을 갖춰야 한다. 자산 증식에만 치중해 아이의 문제 해결 능력과 실패를 극복하는 회복탄력성을 키워주지 못한다면 성인이 된 자녀의 손에 쥐어진 수천만원의 주식은 자립 의지를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 자본은 결코 인적 역량을 대신할 수 없다.
앞으로 눈여겨볼 지표는 국세청이 매년 발표하는 미성년자 증여세 결정액 추이와 20대 청년층의 첫 취업 후 부채 연체율 추이다. 조기 증여로 자본을 확보한 청년층과 경쟁해야 하는 다수 청년 사이의 격차가 사회적 활력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조기에 계좌를 증여받은 세대가 실제로 경제적 자립을 이뤄내는지 여부는 통계로 확인될 것이다.
빨간 플라스틱 돼지저금통은 파손하기 전까지는 동전을 꺼낼 수 없었다. 그 저금통이 전한 가치는 작은 투입구에 지속적으로 저축하는 절제와 목표를 달성했을 때 얻는 성취였다. 2025년 말 한국예탁결제원은 미성년자가 보유한 상장 주식 평가액을 7조3113억원으로 집계했다.
이 글이 어땠나요?
눌러 주시면 다음 글을 쓸 때 소중한 참고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