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세상의 흐름

25조위안 쏟아붓는 베이징의 인프라...한국 제조업을 덮치는 공급 과잉

성인 1억 명 연체에 주담대 이자 대납 나선 중국...25조위안 네트워크 인프라가 낳을 디플레이션 역풍과 한국 산단의 위기

리지

중국 인프라 부양책4분

Illustration by Gemini

중국 재정부가 1일 개인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대신 내주겠다고 발표했다. 사상 처음이다. 생애 첫 주택을 사는 사람에게 5년 동안 해마다 이자를 1%포인트씩 깎아준다. 공안당국은 빚을 갚지 못한 이들을 쫓는 사설 추심업체를 대대적으로 단속했다. 가계가 빚더미에 앉아 소비의 "밸브"를 잠그자 정부가 이자 영수증에 직접 나랏돈을 꽂아 넣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조치는 중국 정부가 경기 침체를 막으려 꺼내 든 25조위안 부양책과 맞물려 있다. 핵심은 네트워크 인프라다. 제15차 5개년 계획을 앞두고 디플레이션을 방어하기 위해 수자원과 통신, 전력망 등 국가 기간망에 약 4,800조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국책 투자다.

중국 가계의 장부는 이미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리서치업체 가베칼드래고노믹스는 금융권 채무를 연체한 중국 성인이 최대 1억 명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전체 성인의 10%다. 이들이 갚지 못한 연체 채무만 2조 2,000억위안, 우리 돈 445조원에 육박했다. 중국 최대 국유은행인 공상은행의 신용카드 부실채권 비율도 치솟아 지난해 말 4.61%였던 연체율이 올해 6월 5.37%로 뛰었다.

은행들은 회수가 불가능해진 부실채권을 헐값에 내던지고 있다. 올해 1~8월 중앙거래시장에 매물로 나온 개인 부실채권은 미상환 원금 기준 2,750억위안을 넘어섰다. 상당수가 원금의 5~7%, 일부는 1%에 팔려 나갔다. 액면가 100위안인 채권이 1위안에 거래된다. 1~8월 소매판매 증가율이 1.1%에 그친 배경이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자 실물 지표 전반이 얼어붙었다. 중국 거시 경제 통계를 총괄하는 국가통계국 집계에서 1~8월 고정자산투자는 1년 전보다 7.2% 감소했다. 부동산 개발 투자가 19.9% 급감했고 민간 투자도 10.1% 줄었다. 2분기 경제성장률은 4.3%까지 떨어져 정부가 내건 연간 목표 하단인 4.5%를 밑돌았다. 지표마다 경고등이 켜지자 국무원은 추가 부양책을 서둘렀다.

중국 공산당이 위기 때마다 꺼내 들었던 처방은 언제나 공급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중국은 4조위안을 인프라에 쏟아부었다. 고속철도를 깔고 고속도로를 뚫었으며 제철소와 화학 공장을 새로 지었다. 세계 경제가 금융위기 늪에 빠졌을 때 중국의 건설 투자가 원자재와 중간재를 빨아들이며 글로벌 경제를 견인했다.

한국 기업들은 중국의 거대한 주문서 덕에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다. 포스코의 철강과 LG화학의 합성수지, 두산의 굴착기가 중국 공사 현장으로 쉴 새 없이 실려 나갔다. 중국이 투자의 "밸브"를 활짝 열면 배관 끝에 서 있던 한국 경제의 계좌로 달러가 쏟아져 들어왔다. 중국의 투자가 곧 한국의 성장이었던 시절이다.

중국 정부는 그 18년 전의 성공 기억을 잊지 못했다. 다시 거대한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전한 해법은 제15차 5개년 계획에 맞춘 25조위안 규모의 6대 네트워크 인프라 투자다. 수자원망과 전력망, 컴퓨팅망, 통신망, 지하관망, 물류망에 걸쳐 5년간 약 4,800조원을 투입한다.

중국 인민은행도 즉각 보조를 맞췄다. 정책금융기관에 장기 저리 자금을 공급하는 담보보완대출(PSL) 1년 만기 금리를 연 1.75%에서 1.50%로 0.25%포인트 내렸다. 6대 네트워크 건설에 자금을 쏟아붓도록 조달 비용을 낮춰준 것이다. 부동산 침체로 빠져나간 자금의 빈자리를 거대한 국책 네트워크 건설로 메우겠다는 계산이다.

중국 정책 당국자들은 이번 투자가 과거의 단순 토목공사와 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유령 도시나 쓰지 않는 지방 공항 대신 디지털과 에너지 고속도로를 깐다는 논리다. 인공지능과 저고도 경제, 첨단 산업의 기반이 될 인프라다. 25조위안이 컴퓨팅 파워와 신형 전력망으로 전환되면 산업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상승해 디플레이션의 덫을 뚫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생산성을 높이는 일과 그 생산물을 살 소비자가 존재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성인의 10%가 빚에 물려 소비를 끊었다. 공장을 더 짓고 통신망을 연결해도 물건을 받아줄 가계의 지갑은 닫혀 있다. 가계 소비 비중이 국내총생산의 40%에도 미치지 못하는 구조에서 25조위안의 투자는 결국 거대한 잉여 생산물을 만들어낼 뿐이다.

중국 제조기업들은 안에서 소화되지 못한 물량을 국경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이미 배터리와 전기차, 철강과 범용 석유화학 제품을 제조 원가 이하로 전 세계에 쏟아내는 중이다. 생산의 "밸브"를 잠그지 않은 채 펌프질만 계속한다. 넘쳐난 잉여가 글로벌 가격 체계를 무너뜨린다. 과거 세계의 인플레이션을 식혀주던 "세계의 공장"이 이제는 전 세계 제조업을 고사시키는 "디플레이션 방류구"로 바뀌었다.

한국 제조업체들은 이 변화의 충격을 가장 날카롭게 맞고 있다. 2008년 4조위안 부양책이 한국에 보낸 것은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리는 주문서였다. 그러나 2026년의 25조위안 부양책은 방파제를 두드리는 파도로 다가온다. 중국이 기초 화학 소재와 범용 철강을 자급하고 초과 물량을 헐값에 밀어내면서 수십 년간 한국 경제를 떠받쳐 온 전통 제조업의 채산성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국가데이터처 지역 통계는 그 상흔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2분기 실질 지역내총생산에서 반도체 공장이 있는 충북은 11.9% 성장했고 수도권도 5.3% 증가했다. 하지만 여수 석유화학 산업단지가 자리한 전남의 지역내총생산은 2.8% 감소했다. 지난해 1분기 이후 6분기 연속 역성장이다. 반도체 착시 뒤편에서 중국발 공급 과잉에 노출된 지방 산업벨트가 무너지고 있다.

한국 수출기업들의 대중 무역 구조 역시 영구적으로 뒤바뀌었다. 과거 대중 흑자의 80% 이상을 차지했던 중간재와 소비재는 더는 팔리지 않는다. 중국이 자체 인프라와 공급망을 25조위안 규모로 촘촘히 엮을수록 한국의 기계와 소재가 비집고 들어갈 틈새는 좁아진다. 중국 정부가 5년 동안 주택 대출 이자를 대신 내줄 만큼 내수가 피폐해진 시장에서 한국 완제품이 설 자리는 없다.

시장 참가자들은 중국의 이 처방이 구조적 반전을 이룰지 가늠하기 위해 세 가지 지표를 주시하고 있다. 첫째는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할 분기 소매판매 증가율이다. 정부의 이자 보조와 소비쿠폰이 1%대 바닥을 기는 소비를 실질적으로 반등시키는지 확인해야 한다. 둘째는 공상은행 등 국유 상업은행의 가계 부실채권 비율이다. 채권 매각 할인율이 1% 수준에 머문다면 가계의 대차대조표는 회복 불능이다. 셋째는 한국 여수 산단의 석유화학 가동률과 제품 스프레드다. 중국발 저가 공급이 이 수치를 계속 억누른다면 기간산업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다.

2008년의 중국은 4조위안의 건설 투자로 세계 경제를 위기에서 건져냈다. 지금은 다르다. 빚더미에 눌린 1억 명의 가계가 소비의 문을 닫아걸고 정부가 쥐여주는 이자 영수증으로 버티는 실정이다. 그 닫힌 문 밖에서 베이징은 또다시 25조위안짜리 공급망의 거대한 "밸브"를 틀어쥐었다. 그리고 1~8월 중국의 신규 주택 판매액은 1년 전보다 13%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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