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주가 뒤의 숫자

삼성중공업, 짓고 있는 배의 249억달러를 은행에 미리 팔았다

수주잔고 35조와 거의 같은 규모...상반기 손익계산서에서 2조원이 서로 지워져

리지

삼성중공업2분

Illustration by Gemini

삼성중공업은 경남 거제에서 천연가스를 액체 상태로 식혀 실어 나르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해양 생산설비를 만든다. 3일에는 86억원을 들여 연구개발센터를 부산 남구 문현금융단지로 이전·확장하고 2028년까지 해양설계 인력을 신규 채용한다는 양해각서를 부산시와 체결했다. 그런데 올해 상반기 손익계산서에는 다른 흔적이 남아 있다. 상반기 매출의 38%에 달하는 자금이 수익과 비용 항목에 나란히 반영됐다가 43억원만 남기고 사라졌다.

선물환이 남긴 흔적이다. 나중에 받을 외화를 지금 정해 둔 환율로 훗날 넘기기로 은행과 미리 맺어 두는 계약이다. 대금이 들어오는 날의 환율에 따라 손에 쥘 원화가 달라지니, 수출 기업은 그 변동 위험을 없애려고 은행과 이 계약을 체결한다.

상반기 연결 매출은 6조 1,330억원이고 영업이익은 5,981억원이다. 그 아래 두 줄이 기타수익 2조 3,497억원과 기타비용 2조 3,540억원이다. 조선사 한 곳의 상반기 장부에 2조원대 수익과 2조원대 비용이 나란히 잡혀 서로를 상쇄하고 43억원을 남겼다.

삼성중공업은 선박 대금을 달러로 받고 그 달러를 은행에 미리 매도해 향후 손에 쥘 원화 규모를 확정해 둔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이 계약의 목적은 "외화선수금 입금, 외화매입대금 지급 등과 관련된 환율변동위험을 회피할 목적"이며 거래 상대는 "하나은행 외 12개의 금융기관"이다. 6월 말 기준 그렇게 매도해 둔 규모가 249억달러로 원화로 환산하면 34조 6,179억원이다. 같은 시점 수주잔고가 35조 1억원이니 건조 중인 선박 대금을 사실상 전액 미리 매도한 셈이다.

환율이 상승하면 은행에 매도해 둔 선물환에서 평가손실이 발생한다. 아직 결제하지 않은 계약을 기말 환율로 다시 계산해 장부에 적는 손실이고, 아직 수령하지 않은 선박 대금에서는 그만큼의 평가이익이 발생해 두 숫자가 손익계산서 양쪽에 나란히 반영된다. 확정계약은 가격과 인도 조건이 이미 정해진 선박 건조 계약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확정계약평가이익 1조 8,699억원과 파생상품평가손실 1조 9,338억원이 서로를 상쇄했다. 지난해 상반기는 방향만 달라 파생상품평가이익 1조 3,994억원이 확정계약 측 손실과 맞물렸다.

문제는 이 상쇄가 선박을 실제로 인도할 때만 유효하다는 점이다. 계약이 파기되면 유입될 달러가 사라지고 은행에 매도한 선물환만 남는데, 그 전례가 반기보고서 연혁에 적혀 있다. 2025년 3월 러시아 즈베즈다 조선소가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자 6,000억원의 파생상품 평가손실이 발생했다. 2025년 6월에는 쇄빙 LNG선 10척과 셔틀탱커 7척 계약이 4조 8,000억원 규모로 취소됐다. 삼성중공업은 이미 받은 선수금 8억 달러의 반환을 유보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통보했다.

삼성중공업 주가 (단위=원, 월봉 종가) 즈베즈다 계약해지 0 10,000 30,000 40,000 2020 2022 2024 2026 6,569 21,650
월봉 종가. 붉은 띠는 러시아 즈베즈다 조선소와의 4조 8,000억원 계약이 해지된 구간이다.

계약 취소 이후에도 수주는 이어졌다. 2분기 영업이익은 3,250억원으로 지난해 2분기 2,048억원보다 늘었고, 수주잔고는 3월 말보다 5조원 넘게 불었다. 그런데도 배당 재원이 되는 별도 재무제표에는 결손금이 1조 4,178억원 남아 있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7조 1,23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여파로, 배당은 2014년을 끝으로 중단됐다. 상반기에 3,408억원을 해소했으니 이 추세라면 2028년 하반기에나 털어낼 수 있다.

주가는 4월 35,350원까지 올랐다가 21,650원으로 조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시가총액 19조 520억원에는 수주잔고 35조원이 단 한 척의 취소도 없이 계약대로 인도된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선박이 인도되면 달러가 유입돼 은행에 매도한 선물환을 결제하고, 손익계산서의 두 항목은 다시 서로를 상쇄한다. 반기보고서가 공시한 공정가치 변동위험 노출 기간은 2030년 9월 30일까지이며, 은행 13곳과 체결한 선물환의 만기도 거기까지 맞물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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