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뒤의 숫자
미국 원전 8기에 뛴 한전기술, 12년 쪼개 받는 설계비
순이익 92%는 옛 사옥 판 돈...체코 1조 계약도 2038년까지 나눠 받아

정부의 2,000억달러 대미투자펀드가 미국 대형 원전 건설에 투입된다는 소식에 원전주가 일제히 급등했다. 원전 설계 공기업인 한전기술 주가도 이틀 만에 30% 넘게 올라 14만 2,600원에 장을 마쳤고, 국내 모든 상용 원전과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도면을 도맡아 그려온 한전기술 시가총액은 5조 4,502억원으로 불어났다. 하지만 지난해 거둔 순이익 854억원 가운데 790억원(92.5%)은 옛 용인 사옥을 매각해 올린 이익이다.
상반기 보고서 주석을 보면 숫자의 내막이 확인된다. 순이익의 92%에 달하는 789억 7,579만원이 사옥 매각 처분이익 항목에 올라 있다. 한전기술은 공시에서 자신을 “세계 최고 수준의 발전소 설계 전문 회사”라고 밝혔지만, 부동산 처분이익을 빼고 거둔 순이익은 64억원에 머물렀다.
땅을 판 해를 빼고 지난 8년 동안 한전기술이 거둔 연평균 순이익은 272억원으로 시가총액 5조 4,502억원은 평년 이익의 200배에 달한다. 시장은 2020년 3월 저점(12,800원) 대비 주가를 11배 넘게 끌어올리며 원전 르네상스를 기대했다. 하지만 연간 매출은 2014년 8,419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줄곧 줄어 지난해 5,188억원에 머물렀고, 이는 10년 새 38% 줄어든 규모다.
주가수익비율 200배는 시장의 착각에서 출발했다. 원전 수주를 제조업 대량생산처럼 여겨 공장을 늘려 제품을 생산하면 매출이 급증하는 제조 기업 논리를 설계 회사에 그대로 적용한 까닭이다. 한전기술은 설비를 제작해 납품하는 공장이 없고 엔지니어의 두뇌와 시간을 파는 지식 용역 기업이다.
올해 6월 말 기준 전체 직원 2,506명 가운데 정규직 2,115명(84.4%)이 설계와 엔지니어링 인력이라, 상반기에 지급한 급여만 1,085억원으로 한 해 매출의 40% 이상이 인건비로 나간다. 숙련 인력이 도면을 일일이 검토해야 하는 특성상 주문이 늘어난다고 설계 물량을 단숨에 늘리기는 어렵다. 원전 전체 공사비에서 설계가 차지하는 비중도 통상 3%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설계비는 수주 즉시 들어오지 않고 공사 기간 내내 나뉘어 지급된다. 지난해 12월 계약한 체코 두코바니 5·6호기 설계 용역은 계약액이 7억 2,495만 유로로 1조원을 넘지만, 계약 종료 시점이 2038년 4월이라 12년에 걸쳐 나눠 받으면 한 해 매출은 800억원 선이다. 2016년에 4,681억원으로 계약한 신한울 3·4호기 설계 용역도 2033년까지 17년 동안 나뉘어 진행된다.
미국 대형 원전 8기 구상은 원전 모델도, 부지도 정해지지 않은 초기 협력 단계다. 기대감은 뜨겁다. 하지만 실제 수주로 이어지더라도 엔지니어링 기업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으며 2,000여 명의 엔지니어가 10여 년에 걸쳐 나눠 받을 설계비로 시가총액 5조 4,000억원을 뒷받침하기는 어렵다. 재무제표에는 2038년까지 나눠 받을 체코 두코바니 수주 잔액 7억 174만 유로가 적혀 있으니, 십수 년에 나뉘어 들어올 설계비를 제조업의 대박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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