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주가 뒤의 숫자

신라교역, 4년 만에 파파이스 접고 선민수산 통째로 사들여

시가총액 웃도는 현금 2,080억원...파파이스에 513억 넣고 철수, 선민수산에 823억

리지

신라교역2분

Illustration by Gemini

시가총액 1,480억원인 신라교역이 보유한 현금과 단기금융자산은 2,080억원으로 시가총액을 웃돈다. 이 돈을 쥔 신라교역은 서울 강동구에 본사를 두고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참치를 잡아 수출하는 국내 2위 원양어업 회사다. 2019년에는 가락시장 2위 도매시장법인 동화청과까지 인수하며 유통망을 넓혔다. 부채비율은 18%에 불과하고 22년 동안 단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이렇게 쌓아 올린 이익잉여금만 6,074억원에 달한다.

정부가 반도체 초호황 세수로 150조원대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해 비상금 저수지를 쌓겠다고 발표한 날이다. 이날 기획예산처 장관은 "남을 때 저장해 뒀다가 부족할 때 쓸 수 있는 재정 곳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곳간은 여유로울 때 채우고 비 올 때 꺼내 쓰는 버팀목이다. 신라교역이 쌓아 둔 현금도 그만한 여력으로 읽혔다. 하지만 주가순자산비율 0.24배라는 숫자의 배경을 묻기 전까지는 그랬다.

시장이 시가총액을 금고 속 현금보다 낮게 억눌러 둔 이유는 돈을 꺼내 쓴 자리에 있었다. 신라교역은 2021년 말 파파이스의 국내 영업권을 따내 자회사 넌럭셔리어스컴퍼니를 세웠다. 바다에서 참치를 잡고 시장에서 과일을 팔던 회사가 치킨 가맹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이 자회사에 2021년부터 2024년까지 네 차례 유상증자로 투입한 현금은 513억원이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해마다 순손실이 쌓이며 자본은 바닥을 드러냈다. 감사인은 "계속기업 존속능력에 유의적 의문을 제기할 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있다고 짚었다. 2008년 시작했던 철강 사업도 이익을 깎아먹었다.

비상금이 주력 사업의 경쟁력을 키우기는 고사하고 엉뚱한 적자를 메우는 구멍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주주들은 차갑게 돌아섰다. 현금이 많아도 본업과 무관한 곳에서 손실이 나면 주주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다는 판단이 주가에 반영됐다. 결국 신라교역은 손을 뗐다. 2025년 12월 철강사업 영업을 중단했고 2026년 2월 파파이스 운영사 지분을 전량 매각하며 외식사업에서 물러났다. 신라교역 관계자는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한 상태"라고 밝혔다. 500억원이 넘는 수업료를 치르고서야 빗장을 걸어 닫았다.

신라교역 주가 (단위=원, 월봉 종가) 사업 재편과 선민수산 인수 8,000 10,000 12,000 14,000 16,000 2020 2022 2024 2026 14,050 9,250
월간 종가. 붉은 띠는 파파이스를 매각한 2월부터 선민수산을 823억원에 인수한 9월까지의 구간이다.

부진한 사업을 정리한 신라교역은 지난 9월 4일 보유 현금의 쓰임을 처음으로 본업 쪽에 밝혔다. 동종 원양어업 회사인 선민수산 지분 100%를 823억원에 사들이기로 공시했다. 선민수산은 자본 503억원에 부채비율 11%로 최근 3년 동안 59억원, 110억원, 77억원의 순이익을 낸 알짜 수산기업이다. 치킨 브랜드를 살리려 513억원을 털어 넣던 회사가 바다에서 경쟁하던 흑자 원양어업 업체를 인수하는 데 현금을 투입했다.

신라교역의 9,250원 주가에는 돈을 벌 줄은 알아도 쓸 줄은 모르는 회사라는 불신이 배어 있다. 현금과 단기금융자산이 2,080억원 있어도 그 돈이 치킨집 적자를 메우러 갈지 모른다면 시장은 0.24배의 빗장을 풀지 않는다. 선민수산 인수는 신라교역이 5년 만에 주력 사업의 해자를 넓히는 자리로 방향을 틀었다는 신호탄이다. 신라교역은 10월 15일 하나은행에서 700억원을 빌려 선민수산의 잔금 658억원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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