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뒤의 숫자
반기 만에 9년치 번 케이씨텍...1.8조 시가총액에 담긴 착시
상반기 순이익 527억원으로 사상 최대...수주잔고는 오히려 8% 줄어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메모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 속에서 케이씨텍의 실적이 크게 늘었다. 케이씨텍은 웨이퍼를 나노 단위로 평탄하게 연마하는 화학기계연마(CMP) 장비와 연마제인 슬러리를 함께 만드는 경기 안성의 반도체 장비 기업이다. 1987년 무역 대리업으로 출발해 2017년 지주사 케이씨에서 인적분할된 케이씨텍은 상반기에만 527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지난 9년간의 연평균 순이익 422억원을 반년 만에 넘어섰다.
실적이 급증한 배경에는 HBM 적층 경쟁이 있다. D램 적층 수가 늘어날수록 칩 표면을 평평하게 가공하는 연마 공정이 늘고 슬러리 사용량도 함께 증가한다. 케이씨텍은 국내에서 연마 장비와 슬러리를 동시에 양산하는 유일한 기업이다. 케이씨텍은 반기보고서에서 "국내 고객사와 상생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설비 증설에 나서면서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5배인 583억원으로 늘었다.
주가도 즉각 반응했다. 1년 전 3만 8,350원이던 주가는 7월 12만 4,800원까지 치솟았다. 시가총액은 1조 8,235억원에 이르렀다. 과거 케이씨텍은 설비투자 주기에 따라 실적이 출렁이는 장비주로 묶여 시가총액 5,000억원 안팎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번 상승 국면에서 시장은 공장 가동률이 유지되는 한 슬러리 매출이 이어지는 소재 기업으로 평가를 바꿨다.
차세대 유리기판 신기술도 기대를 키웠다. 케이씨텍은 웨이퍼 가공 기술을 유리기판 같은 첨단 후공정으로 넓히겠다고 밝혔다. SKC 자회사 앱솔릭스가 짓는 양산 라인에 대당 70억~80억원대 장비와 슬러리를 단독 공급하기로 한 사실도 알려졌다. 부채비율 13%에 금융예치금과 현금성자산만 2,669억원을 쥐고 있어 재무 구조도 탄탄하다.
하지만 장부를 뜯어보면 계산이 달라진다. 시가총액 1조 8,235억원은 상반기 호실적이 이어져 한 해 순이익 1,000억원을 낸다고 쳐도 순이익 대비 주가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인 주가수익비율(PER) 18배다. 9년 평균 순이익을 대입하면 PER은 43배까지 치솟는다. 이번 호실적을 이끈 주요 고객사 장비 납품 계약과 달리 상반기 말 기준 수주잔고는 345억원으로 연초 대비 8% 줄었다.
소재인 슬러리 매출이 장비 공백을 메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장비 납품 없이 소재만으로 연간 1,000억원의 순이익을 낸 적은 없다. 유리기판 역시 고객사의 양산 시점이 유동적인 초기 시장이다. 주가가 12만원을 웃돌던 여름 고상걸 부회장 등 대주주 일가는 지분을 장내에서 내다 팔았다. 지난 4월 자사주 89만주를 소각했던 주주환원 기조와는 다른 행보다.
주가 9만 2,100원에는 설비투자 호황기 장비 매출이 이어지고 소재 기업으로 탈바꿈했다는 기대가 담겨 있다. 고객사의 장비 반입이 끝나고 슬러리만으로 1조 8,000억원대 시가총액을 버틸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오는 10월 6일 SK하이닉스와 체결한 698억원 규모의 공급계약이 끝난다. 분기보고서에 찍힐 새 수주잔고가 이 주가의 바닥을 가늠할 잣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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