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읽기
상속세 10년 새 3.4배...넷 중 셋은 중산층
피상속인 6592명서 2만 2524명으로 급증...건물 상속 7.4배 늘어 20조 돌파

대한민국에서 상속세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서울에 집 한 채를 가진 평범한 가장이 상속세를 걱정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과세 당국이나 납세자 모두 상속세를 소수 자산가의 부의 이전을 규제하는 징벌적 세목으로 여겼다. 2015년만 해도 상속세를 낸 피상속인은 6,592명으로 그해 전체 사망자 27만 5,895명의 2.4%에 불과했다. 100명이 세상을 떠나면 둘 남짓만 세무서 문턱을 넘는 수준이었다. 평생 모은 집 한 채를 상속하려 세무사를 찾아야 하는 지금의 풍경은 과거에는 낯설었다.
10년 새 흐름을 보면 상속세의 기준선이 어디까지 내려왔는지 분명해진다. 2015년 6,592명이던 상속세 과세 대상 피상속인은 지난해 2만 2,524명으로 급증했다. 10년 만에 3.4배로 늘어나며 증가율은 241.7%를 기록했다. 그 10년 동안 전체 사망자 가운데 상속세를 낸 비율도 2.4%에서 6.2%로 세 배 가까이 올랐다.
하지만 국세청의 상속세 결정 통계를 보면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정치권의 구호와 정반대다. 첫째, 상속세 고지서를 받아 든 납세자의 대다수는 더 이상 거액 자산가가 아니다. 상속세가 결정된 피상속인 2만 2,524명 가운데 과세표준 5억원 이하는 1만 2,975명으로 전체의 57.6%를 차지했다. 과세표준 10억원 이하로 넓히면 1만 7,294명으로 76.8%에 달한다. 상속세를 낸 사람 넷 중 셋이 중산층 과세표준 구간에 몰려 있는 것이다. 부유층을 겨냥했던 세목의 납세자 명부를 정작 평범한 은퇴 가구들이 채우고 있다.
둘째, 물려받은 자산의 구성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 상속세는 주로 넓은 토지나 비상장주식을 물려줄 때 발생했다. 2015년만 해도 상속재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자산은 3조 7,290억원의 토지였고, 건물은 2조 7,454억원으로 전체의 27.4%에 그쳤다. 하지만 2024년 통계를 보면 건물 상속재산은 20조 2,166억원으로 전체 상속재산 44조 4,151억원의 45.5%를 차지했다. 건물 상속액은 7.4배 폭증했고 건물을 물려준 피상속인도 4,255명에서 1만 7,504명으로 불어났다. 상속의 무대가 기업 지분이나 땅에서, 살던 집으로 옮겨온 것이다.
상속세 납세자가 급증하고 건물 비중이 치솟은 배경에는 28년 동안 멈춰 선 세법 규정이 있다. 현행 상속세의 일괄공제 5억원과 배우자 상속공제 최저한도 5억원은 1997년에 마련된 기준이다. 제도가 처음 도입된 1997년 서울 강남의 대표 아파트 매매가격은 2억원에서 3억원 선이었다. 공제 한도를 합친 10억원이면 서울 어디든 아파트 서너 채를 사고도 남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2억원을 넘어섰다. 물가와 자산 가치가 몇 배로 뛰는 동안 세법의 시계만 1997년에 묶여 있었다.
지역별 통계를 살펴보면 멈춰 선 공제의 부담이 어디에 미치는지 더욱 분명해진다. 2024년 기준 서울의 피상속인은 7,732명, 경기는 6,095명으로 수도권이 전체 과세 대상의 68.3%를 차지했다. 상속재산 금액으로 따지면 서울 21조 3,434억원, 경기 11조 804억원으로 전체 44조 4,151억원의 73.0%가 두 지역에 집중됐다. 서울과 경기에 집 한 채를 남겨둔 은퇴자들은 부의 편중을 막겠다며 만든 과세 기준에 고스란히 걸려들었다. 집값이 올랐다고 월급이나 연금이 늘어난 것도 아닌데 살던 집을 물려받은 유족들은 수천만원에서 억대의 세금을 현금으로 마련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과세 당국도 제도의 모순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국세청장은 지난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배우자 공제가 27~28년 정도 계속 5억원에 머물러 있는데 개선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며 "물가가 상승한 만큼 중산층이 느끼는 세 부담이 부당하게 증가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세정을 총괄하는 기관의 수장조차 중산층의 과세 부담이 비정상적이라고 인정할 만큼 세법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국회는 세수 결손을 우려하고 여론 눈치를 살피며 30년 가까이 세제 정상화를 미뤄왔다.
상속세를 낸 피상속인은 2015년 6,592명에서 지난해 2만 2,524명으로 급증했다. 상속세 결정세액도 1조 8,439억원에서 8조 9,345억원으로 4.8배 늘어났다. 부의 대물림을 억제하겠다는 명분 뒤에서 28년 동안 방치된 세제는 물가 상승을 타고 평범한 가정의 문턱을 넘어섰다. 정부와 국회가 세제 개편의 범위를 두고 힘겨루기를 이어가는 가운데 국세청은 올해 정기 상속세 결정 통계를 확정해 다음 달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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