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고트하르트 도로 터널, 세계 최장 알프스 관통로를 헌법으로 걸어 잠근 스위스의 역설
1980년 16.9㎞ 관통해 13분 주파...쏟아진 트럭에 질려 2.8조원 2터널도 1차로만 열어
1980년 9월 5일 스위스 알프스에 첫 자동차가 진입했다. 북쪽 괴셰넨과 남쪽 아이롤로를 잇는 고트하르트 관통 구간이었다. 겨울철 폭설로 끊기던 고트하르트 고개 아래를 승용차가 13분 만에 통과했다. 당시 세계 최장 도로 터널이 완공된 날이었다. 스위스는 험준한 산맥을 뚫어낸 토목 기술의 승리에 환호했다.
고트하르트 도로 터널은 1980년 스위스 알프스를 관통해 뚫린 16.9㎞ 도로다. 스위스 정부는 겨울마다 폭설로 끊기던 고트하르트 고개 대신 사계절 내내 알프스를 지나 유럽 남북을 잇고자 건설했다. 세계 최장 도로를 뚫어 알프스를 단숨에 넘게 했지만 스위스는 훗날 헌법에 알프스 도로 용량을 단 한 대도 늘리지 못하도록 명문화했다.
문제는 도로가 열린 직후부터 불거졌다. 독일과 이탈리아를 잇는 최단 통로가 열리자 유럽 전역의 대형 화물차가 계곡으로 쏟아졌다. 하루에도 차량 수만 대가 좁은 골짜기로 몰려들었다. 육중한 화물차들이 뿜어내는 디젤 매연과 소음이 알프스를 뒤덮었다. 도로를 넓히면 차량이 더 늘어난다는 교통경제학의 유도수요 법칙이 고산지대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단일 터널은 밀려드는 화물을 감당하지 못했다. 주말마다 수십 ㎞에 이르는 정체 행렬이 이어졌다.
알프스 계곡 주민과 환경단체는 도로 확장이 삶의 터전을 파괴한다고 판단했다. 1994년 스위스 유권자들은 정부와 의회의 반대를 뚫고 "알프스 보호 이니셔티브"를 국민투표를 통해 과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스위스 연방 헌법에 "알프스 지역 통과 도로의 수용 용량을 늘려서는 안 된다"라는 조항을 못 박았다. 동시에 알프스를 가로지르는 모든 장거리 화물 운송을 도로에서 철도로 전환하도록 의무화했다. 기술이 열어젖힌 도로를 주권자가 헌법으로 봉인한 결단이었다.
도로 확장이 헌법으로 막히자 스위스는 국가 물류의 축을 완전히 바꿨다. 트럭을 도로에서 몰아내려면 화물을 통째로 기차에 싣는 철도 복합운송망이 필요했다. 스위스 정부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알프스 종단 철도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산맥 바닥을 다시 파고들었다. 2016년 개통한 57㎞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이 이 사업의 결실이다. 세계 최장 도로 터널을 뚫었던 나라가 그 도로를 비우기 위해 세계 최장 철도 터널을 새로 팠다.
헌법의 족쇄는 반세기가 흐른 지금까지 굳건하다. 수십 년간 사용해 노후화된 기존 터널을 보수하기 위해 스위스는 두 번째 도로 터널 굴착을 결정했다. 하지만 스위스 유권자들은 국민투표를 통해 엄격한 조건을 달았다. 새 터널이 완공되더라도 두 터널에 각각 한 차로만 열고, 나머지 차로는 비상 갓길로 비워두기로 했다. 새로운 터널이 생겨도 도로 통행 용량은 개통 당시 수준을 그대로 유지한다. 기존 터널의 전면 보수는 새 터널 완공 뒤에 이뤄진다. 스위스 도로 교통을 총괄하는 정부 기관인 연방 도로청은 2032년부터 두 터널을 한 차로씩만 교차 운영한다는 일정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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