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크라이슬러 구제금융, 3억달러 흑자가 남긴 대마불사
1979년 세금 한 푼 없이 살려낸 자동차 신화...30년 뒤 13억달러 손실 청구서로 돌아와

1979년 9월 7일 미국 워싱턴 재무부 청사. 자동차 회사 크라이슬러가 15억달러 연방 대출보증을 요청하는 구제금융 계획서를 냈다. 당시 크라이슬러는 11억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대 적자를 내며 도산 문턱에 서 있었다. 오일쇼크로 소형차 수요가 폭증했지만 창고에는 기름을 낭비하는 대형 세단만 쌓여 있었다. 자본주의 종주국에서 세금으로 부실기업을 살려달라는 요구에 비난이 쏟아졌다. 자유시장 규칙을 무너뜨리는 사회주의 발상이라는 공격이 이어졌다. 크라이슬러는 물러서지 않았다. 회사가 쓰러지면 수십만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정부가 감당해야 할 실업 부조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보고서를 내밀며 의회를 설득했다.
미국 의회가 마련한 대출보증법은 무상 구제가 아니었다. 의회는 법률에 "납세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정부의 재정적 손실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정부는 현금을 직접 지원하지 않고 보증만 서는 대신 회사 밖에서 20억달러 고통 분담을 마련하도록 요구했다. 전미자동차노조는 임금을 줄였고 채권 은행들은 빚을 탕감했으며 부품업체들도 납품 대금을 낮췄다. 최고경영자 리 아이아코카는 스스로 연봉 1달러를 받겠다고 선언하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정부가 쥔 담보가 핵심이었다. 정부는 보증 수수료에 만족하지 않고 크라이슬러 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사들일 수 있는 대규모 신주인수권을 담보로 확보했다. 회사가 살아나면 성장의 과실을 국가가 함께 나누겠다는 구상이었다.
승부수는 통했다. 크라이슬러는 정부 보증을 지렛대 삼아 연비를 개선한 소형차 K-카와 미니밴을 잇따라 흥행시키며 실적을 뒤집었다. 소비자들은 기름을 적게 먹는 실용적인 전륜구동 차량에 지갑을 열었다. 회사는 빚을 빠르게 갚았다. 만기보다 일곱 해나 앞당겨 연방 대출금을 전액 상환했다. 크라이슬러는 주가가 치솟자 정부가 쥐고 있던 신주인수권도 거액을 주고 되샀다. 미국 정부는 수수료와 주식 매각 차익을 합쳐 3억 5,000만달러를 국고로 거둬들였다. 세금을 쓰지 않고 도리어 돈을 번 구제금융의 신화가 탄생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크라이슬러의 귀환은 거대 기업이 흔들리면 국가가 나서서 살려낸다는 대마불사를 미국 산업의 상식으로 굳혔다. 정부가 노사와 금융권을 강제 조정해 구제한다는 성공 방정식이 자리 잡자 도덕적 해이가 생태계 전반으로 번졌다. 정부라는 최종 보증인을 확인한 디트로이트 완성차 업체들은 뼈를 깎는 혁신을 미룬 채 손쉬운 이익에 머물렀다. 유가가 안정되자 다시 기름을 쏟아붓는 대형 차종에 매달렸다. 크라이슬러 역시 낡은 플랫폼을 반복해 늘려 쓰며 연비와 품질 경쟁력을 다시 잃었다.
그 상식의 대가는 한 세대 뒤에 돌아왔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크라이슬러는 다시 파산 문턱에 섰다. 미국 정부는 125억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과거의 기적은 재연되지 않았다. 크라이슬러는 결국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미 재무부는 2011년 7월 21일 크라이슬러 지분을 이탈리아 피아트에 5억달러에 넘기며 13억달러의 최종 손실을 확정하고 구제금융을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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