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노던패시픽 철도 완공, 기차 시간표가 정한 표준시
1883년 대륙 철도 잇자 300개 마을 시계 충돌...열차 사고 막으려 4개 시간대로 통합

1883년 9월 8일 미국 몬태나주 골드크릭의 허허벌판. 전직 미국 대통령 율리시스 S. 그랜트가 묵직한 망치를 들고 철길에 섰다. 그가 선 자리는 동쪽 오대호 연안에서 서쪽 태평양을 향해 오랜 세월 뻗어 온 철길의 마지막 연결점이었다. 정·재계 인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쇠못이 철로 침목에 박혔다. 이 쇠못으로 노던패시픽 철도는 대륙의 북단을 가로지르며 동부와 서부를 하나로 묶었다. 오대호의 곡물과 태평양의 목재가 거대한 대륙 철도로 이어지자 사람들은 거리가 지워진 새 시대에 환호했다.
하지만 철길이 연결되자마자 마을마다 제각각이던 시간이 철도 운행의 발목을 잡았다. 당시 미국에는 전국을 묶는 표준시가 없었다. 사람의 시간은 오직 머리 위에 뜬 해를 따랐다. 해가 하늘 한가운데 오는 순간을 정오로 삼는 태양의 움직임에 맞추다 보니 도시마다 시간이 달랐다. 뉴욕이 낮 12시일 때 보스턴이나 필라델피아의 시계는 저마다 몇 분씩 차이가 났다. 이런 시차 탓에 미국 전역에 300개가 넘는 서로 다른 지역 시간이 쓰였다. 마차를 타던 시절에는 몇 분의 시차가 문제 되지 않았지만 빠른 속도로 달리는 증기기관차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열차가 빨라지자 하나의 기차역 안에서도 노선마다 승강장 시계가 어긋났다. 철도회사들이 노선마다 따로 쓰는 운행 시간표만 50여 개에 달했다. 단선 철로에서 작은 시간 오차는 곧 열차의 정면충돌 참사로 이어졌다.
철길을 아무리 넓혀도 시간을 하나로 묶지 않고는 기차를 안전하게 운행할 수 없었다. 결국 골든 스파이크를 박은 지 한 달 뒤, 철도 경영자 협의체는 시카고에 모여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들은 그리니치 천문대의 본초자오선을 기준으로 북미 대륙을 동부·중부·산악·태평양 등 4개 시간대로 나누는 "철도 표준시"를 채택했다. 표준시는 대륙을 일정한 시간 구역으로 묶어 같은 시각을 쓰도록 정한 제도다. 철도회사들은 구역 안에서는 모든 시계를 똑같이 맞추기로 뜻을 모았다. 그리고 완공 두 달 만인 일요일 정오, 미국 전역의 주요 기차역 시계탑 바늘이 일제히 멈춰 섰다. 멈춘 시계탑 앞에서 철도회사들은 전신으로 본사 신호를 받아 역사 시계를 새 시간대에 맞춰 다시 조정했다. 300개로 흩어져 있던 대륙의 시간이 4개로 묶인 이날을 사람들은 "정오가 두 번 온 날"로 기억했다.
하지만 도시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수천 년 동안 자연의 흐름을 따르던 시간을 민간 기업이 마음대로 바꾼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당시 한 사설은 "태양이 더는 일의 주인이 아니다"라고 적으며 개탄했다. 이런 반발 속에 일부 시의회는 시계탑을 철도 시간에 맞추지 못하도록 조례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기차역 시계를 거부한 대가는 컸다. 자기 마을 시계만 고집하던 승객들은 번번이 눈앞에서 기차를 놓쳤고, 공장들은 화물 출하 시점을 맞추지 못해 손해를 봤다. 결국 시장과 학교, 공공기관이 기차역 시계에 맞춰 벽시계 시간을 바꿨다. 교회 종소리가 지배하던 일상의 주도권이 기차 시간표로 넘어갔다.
이렇게 철도망의 안전 운행을 위해 사기업들이 합의한 시간표가 대륙의 생활 질서로 자리 잡았다. 미국 연방의회는 철도회사들이 시간을 통일한 지 35년 만인 1918년 표준시간법(Standard Time Act)을 제정해 이 4개 시간대를 법률로 공식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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