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오늘의 역사

대통령 친척 홀린 월가 금 투기...미국을 금본위제로 떠민 1869년 파국

대통령 친인척 끌어들여 금 시장 사재기...재무부 400만달러 방출로 투기판 부수고 금본위제로

리지

1869년 9월 24일2분

Illustration by Gemini

1869년 9월 24일 금요일 정오 무렵 뉴욕 금거래소 골드 룸(Gold Room) 분수대 주변에 전보 한 장이 도착했다. 미 재무부가 보낸 전보에는 시장에 금 400만달러를 팔고 국채를 매입한다는 지시가 담겨 있었다. 폭등하던 금 가격은 전보가 도착하자마자 순식간에 20% 가까이 급락했다.

금본위제는 화폐가치를 일정량의 금에 고정하고 정부가 지폐를 언제든 금으로 바꿔주는 통화 제도다. 미국은 화폐가치를 안정시키고 대외 신용을 지키기 위해 남북전쟁 이전부터 이 제도를 유지해 왔다.

상인과 투기꾼이 금에 몰린 배경에는 금으로 바꿀 수 없는 불환지폐가 있었다. 연방정부는 남북전쟁 전비를 치르기 위해 금 태환을 보장하지 않는 지폐 그린백을 대량 발행했고 정부 부채는 급증했다. 무역업자들은 관세를 납부하거나, 유럽과 거래할 때 쓸 실물 금을 확보하기 위해 매일 골드 룸에서 그린백을 주고 금화를 사들여야 했다. 지폐와 금의 교환 비율이 날마다 출렁이면서 시장은 늘 투기 위험을 안고 있었다.

투기판은 이리 철도를 운영하던 제이 굴드와 제임스 피스크가 주도했다. 두 사람은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의 매제인 아벨 코빈을 끌어들이고, 금융 경력이 없는 전직 장군 출신 다니엘 버터필드를 뉴욕 연방 부재무관에 앉혔다. 굴드는 버터필드에게 거액의 수표를 건네며 정부가 국고의 금을 매각하는지 미리 확인해 달라고 매수했다.

투기꾼들은 정부의 금 매각을 차단하고 시장의 금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굴드 일당은 뉴욕 금 유통량의 세 배에 달하는 물량을 사들였다. 서부 농민들이 밀을 유럽에 수출하려면 금 가격이 올라 달러 가치가 떨어져야 한다는 주장에 그랜트 대통령도 한때 금 매각 중단을 검토했다. 9월 24일 아침 피스크가 골드 룸에서 금을 대량 매입하며 가격을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리자, 실물 금을 확보하지 못한 중개인과 유럽 상품을 거래하는 무역상들은 파산 위기에 몰렸다.

친인척의 투기 연루를 뒤늦게 파악한 그랜트 대통령은 조지 바우트웰 재무장관에게 즉각 국고의 금을 방출하라고 지시했다. 전보 한 장에 투기 세력의 매점매석은 무너졌지만, 그에 따른 혼란은 실물경제로 번졌다. 월스트리트 주가는 일주일 만에 급락했고 수십 곳의 중개회사가 파산했다. 시카고 곡물 시장에서는 결제가 마비되며 밀과 옥수수 가격이 하루 만에 절반으로 폭락했다.

미국 하원은 사태 직후 제임스 가필드가 위원장을 맡은 청문회를 열어 시장 조작의 전모를 조사했다. 투기꾼들은 법망을 빠져나갔지만, 의회는 통화 제도의 결함을 분명히 확인했다. 금과 연계되지 않은 불환지폐가 시장에 유통되는 한, 소수의 투기꾼과 결탁한 관료가 국가 경제와 농민의 생계를 언제든 위협할 수 있었다.

혼란을 겪은 미국 정치권은 통화 제도를 금본위제로 되돌렸다. 의회는 화폐태환재개법을 제정해 지폐를 다시 금으로 교환해 주는 제도를 확정했다. 1879년 미국 정부가 액면가 그대로 그린백을 금화로 교환해주기 시작하면서 골드 룸의 투기판은 막을 내렸다. 첫날 뉴욕 재무국 창구에서 지폐를 금으로 바꾼 태환 액수는 13만5,000달러에 그쳤고, 오히려 40만달러의 금이 지폐로 바뀌어 국고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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