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오늘의 역사

텍사스 지도에 새겨진 1000만달러 부채 영수증

1850년 빚더미 벗으려 광대한 서부 양도...연방 채권과 바꾼 반듯한 국경선

리지

1850년 9월 9일2분

Illustration by Gemini

1850년 9월 9일 워싱턴 백악관. 밀러드 필모어 대통령이 법안 하나에 서명했다. 텍사스의 새 경계선을 정하는 내용이었다. 이 서명으로 북쪽과 서쪽을 반듯하게 잘라낸 국경선이 법률로 확정됐다. 오늘날 미국 지도에 새겨진 각진 국경선은 1,000만달러 나랏빚을 갚으려 영토의 3분의 1을 넘긴 부채 거래의 흔적이다.

이 거래의 배경은 독립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1836년 멕시코에서 독립한 텍사스 공화국은 군비와 정부 운영비로 막대한 빚을 떠안았다.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자 텍사스 국채 가격은 액면가의 10분의 1 수준까지 폭락했다. 미합중국의 주가 된 뒤에도 연방정부는 이 빚을 대신 갚아주지 않았다. 파산 위기에 처한 텍사스는 영토에서 출구를 찾았다. 리오그란데 강 북쪽과 동쪽 일대가 모두 자기 영토에 속한다며 서쪽 이웃인 뉴멕시코의 산타페까지 소유권을 주장했다. 주장한 면적만 지금의 텍사스 면적 절반에 달했다. 텍사스가 점령을 위해 민병대를 동원하려 하자 미군이 가로막았다. 양측은 총격전 직전까지 치달았다.

전쟁 직전까지 번지던 위기는 1,000만달러 규모의 연방 채권으로 가라앉았다. 연방의회는 텍사스가 북서부 영토 주장을 포기하면 연방 채권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미국 헌법상 의회가 주의 영토를 강제로 줄일 수 없었다. 그래서 "제안"이라는 형식을 취했다. 텍사스로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실효 지배도 못 하던 황무지를 고수하다 파산할 것인지, 땅을 넘기고 빚을 갚을 것인지 골라야 했다. 텍사스 주의회는 그해 11월 연방의 제안을 가결했다. 연방이 건넨 채권 가운데 절반은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에게 직접 돌아갔다. 낮은 가격에 채권을 사들였던 동부 금융권 투자자들은 액면가를 온전히 회수했다.

채권자들에게 진 빚을 갚자 텍사스는 순식간에 부채 없는 주가 됐다. 남은 자금으로 학교를 짓고 주청사를 세웠다. 한동안 주 세금을 면제하기도 했다. 대신 텍사스가 넘긴 땅은 뉴멕시코와 유타 준주로 편입됐다. 텍사스의 영토 축소는 남부 노예주의 세력 확장을 막으려던 북부 정치권의 계산과도 맞아떨어졌다. 텍사스가 물러선 땅에서 노예제는 뿌리내리지 못했다. 광대한 서부 영토의 경계는 군대의 총칼 대신 국채 이자와 부채 탕감 계산이 갈랐다.

계산기 위에서 그어진 반듯한 국경선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대로다. 북쪽과 서쪽으로 꺾여 들어간 텍사스의 경계선은 당시 채권단과 주정부가 빚을 갚으며 합의한 모양 그대로다. 텍사스가 빚 대신 넘긴 그 땅에는 오늘날 뉴멕시코의 유전과 콜로라도의 광물 지대가 들어서 있다. 미국 의회 기록을 보관하는 국립 도서관인 의회도서관은 그날 승인된 이 법안 원본을 공공 법률 제49호로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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