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오늘의 역사

"취미"라던 1만줄...리눅스, 슈퍼컴퓨터 100%를 채우다

1991년 토르발스가 올린 1만 줄 커널...코드 공개 의무화한 라이선스로 글로벌 인프라 장악

리지

1991년 9월 17일2분

Illustration by Gemini

헬싱키대 학생 리누스 토르발스는 1991년 9월 17일 대학 네트워크 서버를 열었다. 토르발스는 80킬로바이트 압축 파일을 서버에 올렸다. 이 파일은 개인용 컴퓨터에서 직접 작성한 운영체제 핵심 코드(커널)였다.

토르발스는 프로그램 이름을 괴짜를 뜻하는 "프릭스(Freax)"로 붙이려 했다. 그러나 서버 관리자 아리 렘케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의도 없이 폴더 이름을 "리눅스"로 등록해 올렸다. 훗날 전 세계 컴퓨터를 움직일 이름이 그렇게 정해졌다.

운영체제는 컴퓨터 부품과 응용 프로그램을 중개하며 자원을 관리하는 기본 소프트웨어다. 서버에 올라온 첫 버전 0.01의 소스코드는 주석을 합쳐 1만 줄 남짓에 불과했다. 토르발스는 공개 한 달 전 게시판에 "취미일 뿐이고 크거나 전문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이 작은 프로그램은 특정 하드디스크가 달린 개인용 컴퓨터 외에는 작동하지도 않았다.

초기 배포 조건은 상업적 판매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토르발스는 저작권 안내문에 "복사나 취급에 따른 수수료조차 받아서는 안 된다"라는 조건을 달았다. 무료로 쓰되 누구도 이것으로 영리 활동을 하지 못하게 묶어둔 것이었다.

운영체제의 운명을 바꾼 분기점은 이듬해 찾아왔다. 토르발스는 배포 규정을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을 이끈 리처드 스톨먼이라는 프로그래머가 만든 일반 공중 사용 허가서(GPL) 2판으로 변경했다. 이 규정은 코드를 돈 받고 파는 상업적 유통을 막지 않는 대신 코드를 수정해 배포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고친 소스코드를 똑같이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남이 수정한 코드를 독점하지 못하게 막은 이 원칙이 서자 전 세계 엔지니어들이 코드 개발에 뛰어들었다. 기업들도 경제적 실익을 따지기 시작했다. 독자 운영체제를 개발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지만, 리눅스를 도입하면 개발 비용을 치르지 않고도 안정적인 시스템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 나스닥에 상장한 소프트웨어 기업 레드햇은 리눅스 기술 지원 서비스만으로 수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대형 컴퓨터 제조사 IBM은 리눅스 개발에 1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선언하며 힘을 보탰다. 경쟁사들이 코드를 함께 다듬고 개발 비용을 나누는 협력 모델이 기존 소프트웨어 시장을 재편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한때 리눅스를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협으로 규정하고 거세게 견제했다. 그러나 클라우드 컴퓨팅 시대가 열리자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자사 서비스 애저(Azure)에서 리눅스를 전면에 내세웠다. 독점 라이선스를 판매하던 운영체제 시장은 공유 인프라를 바탕으로 서비스를 판매하는 구조로 전환됐다.

30년이 흐른 지금 리눅스는 전 세계 디지털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뼈대가 됐다. 세계 500대 슈퍼컴퓨터의 100%가 리눅스로 가동된다. 수십억 대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주요 글로벌 클라우드 서버의 90% 이상이 리눅스 위에서 구동되고, 화성 상공을 비행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무인 헬리콥터 인제뉴이티 역시 리눅스로 제어됐다.

오늘날 리눅스 커널 개발에 참여하는 프로그래머의 80% 이상은 기업에서 보수를 받는 정규직이다. 인텔과 구글, 삼성전자와 화웨이의 엔지니어들이 매일 리눅스 코드 저장소에 개선안을 올린다. 1991년 9월 17일 핀란드의 대학생이 올린 1만 줄 파일은 이제 매년 수조 달러 규모의 글로벌 산업을 움직이는 공용 인프라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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