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제록스 복사기 막히자 저작권법 뒤집었다...클라우드 낳은 카피레프트 40년
1985년 자유소프트웨어재단 설립...슈퍼컴퓨터 100%·스마트폰 70% 안드로이드 기반

1985년 10월 4일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인공지능 연구소의 프로그래머 리처드 스톨먼은 미국 보스턴에서 비영리 법인인 자유소프트웨어재단(FSF)을 세웠다. 그는 연구소에서 일하던 시절 복사기가 고장 났을 때 화면에 알림을 띄우는 코드를 직접 수정하지 못해 불편을 겪었다. 복사기 제조사인 제록스가 비밀유지협약(NDA)을 이유로 소스코드를 넘겨주지 않자 그는 소프트웨어를 독점하고 공유를 가로막는 관행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자유 소프트웨어는 사용자가 프로그램을 실행, 복제, 수정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자유소프트웨어재단은 기업의 소프트웨어 사유화를 막고 소스코드 공유를 제도화하기 위해 1985년 스톨먼이 설립한 비영리 법인이다.
스톨먼 연구원은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하는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저작권이 없는 상태로 코드를 풀면 기업들이 소프트웨어를 가져다 일부만 고친 뒤 상용 프로그램으로 독점할 위험이 있었다. 그는 저작권법의 배타적 권리를 거꾸로 이용해 수정한 코드까지 의무적으로 공개하게 만드는 "카피레프트(copyleft)" 규약을 설계했다.
자유소프트웨어재단이 제정한 라이선스인 GNU 일반 공중 사용 허가서(GPL)는 소프트웨어의 복제, 수정, 배포의 권리를 보장했다. 개발자가 이 코드를 활용해 파생 프로그램을 외부에 배포할 때는 파생 프로그램의 전체 소스코드도 같은 조건으로 공개해야 했다. 재단은 이 공유 의무 조항을 통해 기업들이 오픈소스 자원을 일방적으로 독점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상용 소프트웨어 업계는 파생 코드 공개 조항에 강하게 반발했다. 프로그램을 일부라도 가져다 쓰면 전체 소스코드를 공개해야 하는 탓에 독점 권리인 지적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스티브 발머 전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는 인터뷰에서 GPL을 두고 지적재산권에 달라붙는 "암(cancer)"이라 불렀다.
하지만 강제적인 공개 요건은 기업들이 안심하고 개발에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 프로그래머 리누스 토르발스가 개발한 운영체제 핵심인 리눅스에 GPL을 적용하면서 재단이 만든 컴파일러와 셸 등 핵심 도구들과 결합했다. 특정 기업이 기술을 독점할 수 없다는 규칙이 확인되자 기업들이 리눅스 개발에 뛰어들었고 고가 유닉스가 차지하던 서버 시장은 개방형 시스템으로 전환됐다.
이 협력 구조는 자유 소프트웨어를 IT 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올려놓았다. 전 세계 500대 슈퍼컴퓨터의 100%, 전 세계 스마트폰의 70%를 웃도는 안드로이드 기기가 리눅스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리눅스 재단의 최고 등급 후원사로 합류해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Azure) 가상머신의 절반 이상을 리눅스로 구동하고 있다.
재단은 설립 39년 만에 보스턴 본부 사무실을 정리하고 전면 원격 근무 체제로 전환했다. 동시에 코드를 공개해 독점을 막는다는 40년 전의 설계는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빅테크 기업들은 수십 년간 축적된 공개 코드를 거대언어모델(LLM) 학습에 대량 투입했지만 완성된 모델과 데이터센터는 자사의 폐쇄형 유료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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