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신청 안 한 카드 6만장을 우편함에...비자 만든 1958년 도박
1958년 뱅크오브아메리카의 프레즈노 살포...연체율 22% 혼란을 딛고 글로벌 결제망으로

소비자는 지갑 속 신용카드를 정교한 신용 심사와 금융 공학의 결과물로 여긴다. 소득을 증명하고 까다로운 대출 심사를 거쳐야 비로소 카드를 쥘 수 있다는 생각도 당연한 상식으로 통한다. 하지만 오늘날 전 세계를 잇는 신용카드망은 이 상식과 정반대인 지점에서 출발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1958년 9월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에 사는 주민 6만 가구의 우편함에 신청하지도 않은 실물 신용카드를 일제히 보냈다. 우편 봉투를 열어본 주민들은 그제야 500달러 한도가 적힌 채 곧바로 쓸 수 있는 카드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금융 역사에서 가장 무모한 시도로 꼽히는 대량 카드 살포가 그렇게 시작됐다.
상인과 소비자는 그전에도 외상 거래를 경험했지만 어디서나 통용되는 결제망은 없었다. 식당 결제망을 운영하던 다이너스클럽은 다음 달 청구액 전액을 한 번에 결제해야 했고, 백화점 카드는 백화점 매장을 벗어나면 쓸 수 없었다. 카드를 쓸 매장이 적으면 소비자가 외면하고, 고객이 없으면 상인이 수수료를 내며 가맹할 이유가 없었기에 범용 카드 도입은 번번이 무산됐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조셉 윌리엄스는 이 교착 상태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윌리엄스는 시내 가맹점 1,000여 곳을 먼저 확보한 뒤 소비자의 신청 절차를 생략하고 25일 무이자 유예와 분할 상환이 가능한 6만 장의 실물 카드를 우편함으로 보냈다. 훗날 업계에서 "드롭(drop)"이라 불린 이 파격적인 방식은 잔액을 이자와 함께 나누어 갚는 회전신용(revolving credit)을 대중의 일상으로 정착시켰다.
그에 따른 대가는 적지 않았다. 윌리엄스는 고객의 상환 능력을 지나치게 낙관해 대출 심사조차 거치지 않았다. 연체율은 은행이 예상했던 4%를 크게 웃돌아 22%까지 치솟았고, 도용 범죄가 늘면서 은행은 2,000만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기록했다.
경영진은 사업을 접는 대신 신용 관리 체계를 새로 짰다. 은행은 혼란에 사과하는 공개 서한을 주민들에게 보내고 연체 추심과 발급 기준을 엄격하게 세웠다. 손실을 정리한 신용카드(뱅크아메리카드) 사업은 수년 만에 흑자로 전환됐고, 은행은 경쟁사의 시장 진입을 늦추기 위해 흑자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결제망이 커지자 은행은 독점 체제를 개편하고 연합망을 구축했다. 가맹 은행들은 독립 법인을 세워 운영권을 인수했고, 1976년 "어느 언어로도 쉽게 식별할 수 있고 어디서나 통용된다"라는 취지를 담아 서비스 명칭을 "비자(Visa)"로 바꿨다. 다른 금융사들도 프레즈노에서 검증된 우편 발송 방식을 채택하며 카드망 구축에 뛰어들었다.
무차별 카드 발송은 부작용 탓에 결국 법으로 금지됐지만, 이미 미국 전역에 1억 장이 넘는 카드가 공급된 뒤였다. 우편함으로 들어간 카드로 소비자의 결제 방식은 현금에서 신용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프레즈노를 시험대로 삼았던 결제망은 오늘날 전 세계 40억 장 이상의 카드와 연간 40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한 글로벌 결제망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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