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전쟁 중에도 수문은 잠그지 않았다...인더스강이 지킨 60년 평화
공동 관리 대신 물길 분할 선택...세계은행이 10억달러로 이끌어낸 평화
1960년 9월 19일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자와할랄 네루 인도 총리와 아유브 칸 파키스탄 대통령이 인더스강 수자원 조약에 서명했다. 영토 분쟁으로 총구를 겨누던 두 나라는 이 조약으로 6개 강의 물길을 나눴다. 훗날 두 나라가 세 차례 전면전을 치르는 격전 속에서도 인도는 파키스탄 쪽 수문을 닫지 않았다.
인더스강 수자원 조약은 1960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국경을 가로지르는 하천의 물길을 나누기 위해 세계은행 중재로 체결한 조약이다.
물 분쟁은 1947년 영국령 인도의 분할 독립에서 시작됐다. 새로 그어진 국경선은 인더스강 유역의 거대한 곡창 지대인 펀자브 평야에 농업용수를 대는 수로망 한가운데를 갈랐다. 인더스강 유역 6개 강의 상류와 핵심 취수 시설은 인도 땅에 남은 반면 그 물을 받아 농사를 짓던 펀자브 평야의 넓은 농경지는 고스란히 하류의 파키스탄 영토로 넘어갔다. 상류를 쥔 인도가 이듬해 봄 운하 물 공급을 일시 차단하자 파키스탄 전역의 농업용수 공급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초기 협상은 수자원을 함께 쓰자는 이상주의적 화해로 흘렀다. 미국 테네시강 유역 개발을 이끌었던 기술 관료 데이비드 릴리엔솔의 제안에 따라 세계은행이 중재자로 나섰다. 세계은행은 두 나라가 위원회를 꾸려 6개 강의 수량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하지만 상대국이 수문을 쥐고 있는 한 누구도 안심할 수 없었고 주권과 기득권을 둘러싼 대립 탓에 협상은 2년 넘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세계은행은 결국 공동 관리라는 환상을 버렸다. 중재단은 자원 공유 대신 6개 강을 3개씩 나눠 소유권을 가르는 분할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동쪽으로 흐르는 라비·베아스·수틀레지강의 이용권은 인도에 온전히 넘기고, 서쪽의 인더스·체나브·젤룸강 물길은 파키스탄이 전적으로 통제하도록 수자원을 둘로 나눴다. 자원을 함께 나누어 쓰는 대신 배타적인 소유권을 인정해 물리적으로 부딪칠 기회 자체를 없애자는 구상이었다.
동쪽 강의 물이 끊기면 파키스탄 쪽 기존 운하가 마르는 구조적 문제가 뒤따랐다. 세계은행은 파키스탄이 동쪽 강물을 쓰지 못하는 대신 서쪽 강의 물을 끌어와 농경지를 적실 대규모 대체 수로와 저수 댐을 새로 건설하는 중재안을 확정했다. 인도는 파키스탄의 대체 시설 건설비로 6,206만파운드를 현금으로 부담하기로 약속했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도 기금을 보태 타르벨라 댐과 망글라 댐 공사를 지원했다. 네루 총리는 의회에서 "우리는 수자원 합의를 돈으로 샀다"고 밝혔다.
선린 우호의 구호 대신 명확한 정산과 물리적 분리가 평화를 지켰다. 5년 뒤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터져 지상군이 격돌했을 때도 인도는 약속한 공사 분담금을 제때 지급했다. 상설 인더스 위원회는 공습경보가 울리는 와중에도 정례 회의를 열어 강물 유량 자료를 주고받았다. 물을 상호 협력의 선물로 포장하지 않고 각자의 자산으로 분리했기에 조약은 깨지지 않았다.
인더스강 수자원 조약은 반세기 넘게 국제 하천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한 대표적 제도 모델로 평가받는다. 60여 년 동안 국경에서 전면전이 반복됐지만 두 나라는 조약을 파기하지 않고 지켰다. 파키스탄은 인도가 건넨 분담금과 국제 차관으로 8개 연결 수로를 완공해 독자적인 농업용수를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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