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오늘의 역사

트랜지스터 대신 진공관 묻었다...대서양 해저 케이블이 연 36회선

4000m 심해에 묻힌 첫 해저 케이블...22년간 고장 없이 실시간 통화 열어

리지

1956년 9월 25일2분

Illustration by Gemini

1956년 9월 25일 영국 우편청과 미국 AT&T 대표들이 수화기를 들었다. 런던과 뉴욕에서 나눈 첫 통화는 대서양 2,800km 해저에 깔린 케이블을 통했다. 전파 간섭이나 잡음 없이 맑은 음성이 전화기 너머로 전달됐다. 첫 대서양 횡단 해저 전화 케이블 TAT-1이 상업 운용을 시작한 순간이었다.

해저 케이블은 국가와 대륙 간 통신을 위해 바다 밑에 매설하는 통신 케이블이다. 19세기 중반 대서양에 전신 케이블이 처음 깔린 데 이어 잡음과 혼선이 잦은 단파 무선 전화를 대체해 안정적인 실시간 통화를 연결하려고 영국과 미국이 마침내 첫 해저 전화 케이블을 완성했다.

그전까지 두 대륙을 잇는 전화는 상공의 단파 무선에 의존했다. 무선 전화는 몇 분 통화에도 9파운드를 치러야 할 정도로 비쌌다. 기상 상태와 태양 흑점에 따라 잡음이 섞이거나 끊어지기 일쑤였다. 대서양 전체를 통틀어 동시에 통화할 수 있는 무선 회선도 손에 꼽혔다. 해저 케이블이 개통되자 첫 스물네 시간 동안에만 런던과 북미 사이에 700건 넘는 통화가 몰렸다.

대서양 해저에 통신망을 깔 때 구축을 맡은 기술진은 최신 기술을 피했다. 당시 벨 연구소는 이미 트랜지스터를 개발한 상태였지만 바다 밑에 부설하는 케이블에는 단 하나도 쓰지 않았다.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트랜지스터의 수명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심 수천 미터 심해에서는 한번 고장 나면 보수가 어려워 오랜 기간 이상 없이 버틸 부품이 필요했다. 연구원들은 부피가 크고 전력 소모가 많은 대신 수명이 검증된 진공관을 택했다. 대서양 해저 69km마다 신호를 되살리는 진공관 증폭기 51개가 들어갔다.

바다 밑 36개 회선이 확보한 안정성은 국제 정치의 소통 방식을 바꿨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국과 소련은 외교 서한을 주고받고 해독하는 데만 반나절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이듬해 우발적 핵전쟁을 막기 위해 백악관과 크렘린궁 사이에 설치된 직통 회선 핫라인도 이 케이블의 전신 회선을 빌려 운용됐다. 번역 오류를 막기 위해 음성 대신 인쇄전신기로 문자를 주고받았지만 신호는 대서양 해저의 구리선을 타고 오갔다.

사람들은 인공위성이 상공을 덮으면 해저 케이블이 사라질 것이라 내다봤다. 하지만 전파는 우주를 오가는 물리적 지연 시간이 길고 기상 조건의 영향을 받는다. 오늘날 전 세계 인터넷과 금융 데이터의 대부분은 여전히 해저에 깔린 수백 개의 광케이블을 통해 오간다. 인공위성은 심해 케이블이 닿지 않는 극지방이나 선박을 보조할 뿐이다.

당대 기술진은 대서양을 건너는 첫 해저 케이블에 모험 대신 가장 둔하고 튼튼한 부품을 채워 넣었다. 이 케이블은 1978년 공식 운용을 마칠 때까지 22년 동안 해저 증폭기가 단 한 번도 고장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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