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오늘의 역사

CERN, 1954년 설립조약 한 문장 따라...웹 소스코드 지식재산권 포기

군사 연구는 하지 않고 결과는 모두 공개한다는 제2조...고퍼에 사용료가 붙은 해 웹서버는 50대에서 500대로

리지

1954년 9월 29일2분

1954년 9월 29일 유럽 12개국이 조약 하나를 비준하자 조약이 발효됐다. 발효한 날 제네바 교외 메랭의 부지에는 건물이 한 채도 없었고 준비 협의회는 코펜하겐 대학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런 연구소의 설립 조약 제2조에는 "본 기구는 군사적 목적의 연구를 다루지 않으며, 실험과 이론 연구의 결과는 공개하거나 달리 일반이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 조약으로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가 생겼다. CERN은 회원국이 국민소득에 비례해 낸 분담금으로 운영되고 그 분담금으로 나온 결과에는 사용료를 붙이지 않는다. 결과를 공개하기로 한 이상 특허와 사용료로 연구비를 보태는 길은 열려 있지 않았다. 설립 뒤 얼마 지나지 않아 CERN 과학정보실은 학술지에 실리기 전 원고인 프리프린트를 연구자들에게 보냈다.

제2조가 소프트웨어까지 미치는지는 39년 뒤에 판가름 났다. CERN 연구원이던 팀 버너스리가 그사이 연구자들이 자료를 주고받을 하이퍼텍스트 체계를 제안했고 첫 웹사이트가 문을 열었다. 웹사이트가 열린 그때 인터넷에서 문서를 찾아보는 주된 길은 미네소타대가 만든 고퍼였다.

1993년 2월 미네소타대는 직접 만든 고퍼 서버에 사용료를 물리겠다고 밝혔다. 사용료가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학이 만들지 않은 독립 구현에도 사용료가 붙을 수 있다는 우려가 퍼졌고 빠르게 늘던 고퍼 서버는 거기서 더 늘지 않았다.

미네소타대가 사용료 방침을 밝힌 두 달 뒤인 4월 30일 CERN은 문서 한 장을 냈다. 연구 담당 이사와 행정 담당 이사가 서명한 이 문서에는 "CERN은 이 코드의 소스와 실행 파일 모두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포기하며, 누구든 사용하고 복제하고 수정하고 재배포하도록 허락한다"고 적혀 있었다. 공개 소프트웨어 라이선스가 자리를 잡기 전이어서 CERN은 조건을 다는 대신 권리를 아예 포기했다.

권리를 포기한 그 상태가 공개 도메인이다. 웹 소프트웨어가 공개 도메인에 들어가면서 누구나 라이선스 협상 없이 서버와 열람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됐다. 1월에 50대이던 웹서버는 그해 10월 500대를 넘어섰다. 웹 트래픽은 1년 안에 고퍼를 추월했다.

CERN은 이듬해 다음 판을 오픈소스 라이선스로 내놨고 웹 표준을 맡은 W3C는 사용료 없는 기술만 표준으로 삼기로 했다. CERN의 올해 예산 15억1,500만 스위스프랑도 회원국이 국민소득에 비례해 낸 돈이고 그 돈으로 나온 결과는 여전히 공개된다. 사용료를 물렸던 미네소타대는 7년 뒤 고퍼 소프트웨어를 GPL로 다시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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