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오늘의 역사

파일 청구에 종이 수만 장 떠넘긴 관청...클린턴 서명이 연 데이터 시장

1996년 전자 정보공개법으로 디지털 기록 의무화...한 해 청구 150만 건으로 폭증

리지

1996년 10월 2일2분

Illustration by Gemini

1996년 10월 2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서명한 전자 정보공개법 개정안은 30년 전 제정된 정보공개법을 고쳐 컴퓨터에 저장된 디지털 기록을 전면적인 정보공개 대상에 포함했다. 당시 미국 연방정부에 컴퓨터 데이터를 요청하면 관공서는 플로피디스크 한 장 대신 종이 수만 장을 인쇄해 상자째 화물차에 실어 보냈다.

공공데이터는 정부가 업무 과정에서 생산한 디지털 정보다. 이 법안은 관공서 내부 전산망에 보관된 전자 기록을 시민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법률상 의무로 못 박았다.

관공서에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면서 행정 업무는 전산망으로 옮겨 갔지만 공무원들은 옛 종이 문서를 기준으로 만든 법조문을 내세워 디지털 파일 제공을 완강하게 거부했다. 연방 기관들은 컴퓨터 테이프나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된 자료는 법률이 규정한 기록이 아니며, 특정 정보를 추출하는 작업 역시 새로운 문서를 만드는 행위에 해당한다며 청구를 거부했다. 파일 원본을 거듭 요구하는 시민에게는 수만 장의 종이를 연속 출력해 전달한 뒤 장당 복사 수수료를 물려 청구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패트릭 레이히 상원의원을 비롯한 의원들은 관료들의 횡포를 막으며 전자 형태로 보관되는 모든 정보 역시 공공 기록에 해당한다는 조항을 개정 법률에 명시했다. 신청자가 원하는 파일 형식으로 자료를 넘겨주도록 의무화해 종이 출력을 강요하지 못하게 했고, 자주 청구되는 문서는 개별 신청을 기다리지 않고 웹사이트의 "전자 열람실"에 미리 게시하도록 규정했다.

정부 기록의 전자 개방은 행정 감시의 차원을 넘어 미국 기상청의 관측 자료와 인구조사국의 통계, 연방 조달 계약과 특허 원문이 디지털 파일 형태로 민간 시장에 대거 풀리는 계기가 됐다. 민간 기업들은 관공서가 개방한 원시 데이터를 가공해 금융 분석 프로그램과 부동산 시세 서비스, 차량 항법 지도를 개발하며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오늘날 인공지능 개발에 쓰이는 방대한 학습용 데이터 세트 역시 정부의 선제적인 공공데이터 공개 정책을 바탕으로 쌓였다.

기록을 컴퓨터로 열람하게 되자 의회는 공무원들의 업무 부담을 감안해 법정 처리 기한을 기존 10영업일에서 20영업일로 늘렸다. 하지만 행정부 안에 이메일과 전자문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연방정부에 쏟아지는 정보공개 청구 건수 역시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증했다. 전산망으로 문서를 손쉽게 전달하는 환경이 갖춰졌지만 정작 한 건의 청구를 심사해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오히려 늘어났다.

미국 법무부 정보정책국 집계에 따르면 최근 연방정부에 접수된 연간 정보공개 청구는 150만 1,432건으로 사상 최대치에 달했다. 청구를 제때 소화하지 못해 다음 해로 넘어간 미처리 건수 역시 26만 7,056건으로 전년 대비 33% 급증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 글이 어땠나요?

눌러 주시면 다음 글을 쓸 때 소중한 참고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