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이더넷 명세 첫 장의 특허 고지...제록스, 3년 만에 권리 IEEE에 넘겨
IBM 토큰링과 갈라선 표준 후보...950달러 랜카드가 값을 끌어내려 1992년 사실상 표준
1980년 9월 30일 나온 통신 규격 명세서 한 권의 표지에는 회사 이름이 셋 나란히 박혔다. 미니컴퓨터를 만든 디지털이퀴프먼트(DEC), 반도체를 만든 인텔, 복사기를 만든 제록스였다. 서로 다른 물건을 팔던 세 회사가 근거리 통신망 설계를 초당 1,000만 비트 한 벌로 묶어 내놓고 이더넷이라 이름 붙였다. 그런데 본문에 앞서 실린 첫 장은 사용권 고지였다. "이 명세에는 제록스 특허와 관련된 내용이 들어 있다. 이 명세를 공표한 결과로 그 특허의 사용권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이더넷은 1973년 제록스의 팰로앨토연구소에서 로버트 멧커프와 데이비드 보그스가 만든 근거리 통신망 방식이다. 한 건물 안에 흩어진 컴퓨터와 프린터를 케이블 한 줄에 함께 매달아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게 하려던 것이었고, 1980년 명세서는 제록스가 이 방식을 DEC, 인텔과 함께 다듬어 다른 회사도 이 규격으로 만들 수 있도록 공개한 문서다.
이더넷은 그 고지를 달고 전기·전자 기술자들이 모여 규격을 정하는 단체인 IEEE의 근거리 통신망 표준 후보에 올랐다. 맞선 후보는 IBM이 밀던 토큰링과 제너럴모터스가 고른 토큰버스였다. 둘 다 보낼 차례를 뜻하는 토큰을 기기들이 돌려 가며 받아 순서를 정하는 방식이다. 어느 쪽으로 정할지 합의가 되지 않아 1980년 12월 위원회는 세 갈래로 갈라섰다. 후보마다 따로 표준을 만들었다. 이더넷 쪽 표준인 802.3이 나온 1983년 제록스는 이더넷 특허를 전부 IEEE에 넘겼다. 그 뒤로 802.3은 누구나 구현해 팔 수 있는 설계가 됐다.
설계가 열리자 값이 부품에서 먼저 움직였다. 이더넷을 설계한 로버트 멧커프는 1979년 제록스를 떠나 통신 장비 회사 3Com을 세우고 개인용 컴퓨터마다 이더넷 카드를 꽂겠다고 했다. 3Com이 내놓은 EtherLink는 개인용 컴퓨터 본체에 꽂는 카드로, 송수신 회로까지 칩 하나에 담은 첫 랜카드였고, 값은 950달러로 경쟁 제품보다 훨씬 낮았다. IBM은 자사 토큰링에 매여 있었고, 1982년 한 달에 20만 대씩 팔려 나간 IBM PC를 서로 잇는 일은 EtherLink가 맡았다. 3Com은 1984년 증시에 상장했다.
값은 1989년 한 번 더 내려갔다. 네트워크 운영체제를 팔던 노벨이 랜카드 사업을 넘기면서 자사 NE2000 설계를 다른 업체도 쓰도록 라이선스로 개방했다. 이 카드를 여러 회사가 만들자 이더넷 카드 값은 내려가고 토큰링 카드 값은 그대로 높았다. 1990년 IEEE가 전화선으로 쓰던 구리선에 이더넷을 얹는 10BASE-T를 내놓자 이듬해 이더넷 매출은 거의 두 배가 됐다. 1992년에는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 쓰는 이더넷에는 1980년 명세가 정한 핵심 절차가 없다. 그 명세는 동축 케이블 한 줄을 여럿이 나눠 쓰는 것을 전제로, 먼저 듣고 보내다가 신호가 부딪히면 무작위로 기다렸다 다시 보내는 방식을 정했다. 지금은 기기마다 스위치에 따로 이어져 보내기와 받기를 동시에 하니 부딪힐 자리가 없다. 명세에서 살아남은 것은 장비마다 다르게 박아 넣는 48비트 주소(MAC 주소)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의 휴대전화가 와이파이에 붙을 때도 그 48비트 주소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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