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세상의 흐름

CME, 서버 사용권 없이 임대료 지수로 정산하는 GPU 선물 추진

규제 검토가 남아 거래 개시일은 미정

박정우 작가

연산시장4분

시카고상품거래소그룹(CME)이 준비하는 새 선물의 거래 단위는 GPU 730시간입니다. GPU 한 장을 한 달 내내 가동하는 시간에 가깝죠. 그런데 이 계약을 구매해도 만기에 서버에 접속할 권한은 생기지 않습니다. 거래 당사자는 임대료 지수의 변동에 따라 차액을 정산합니다. 서버 사용권과 임대료 변동 위험을 분리해 거래하는 계약인 것이죠.

GPU를 빌려주는 사업자와 빌려 쓰는 기업은 임대료 변동에 따른 위험을 서로 다르게 부담합니다. 코어위브 같은 AI 전문 클라우드 사업자는 GPU를 담보로 돈을 빌리고 고객과 계약을 맺어 설비를 늘립니다. 사업자는 서버를 먼저 마련한 뒤 사용료를 받으므로 앞으로 받을 임대료가 떨어지면 투자비를 회수하기 어려워집니다. 반대로 AI 모델을 개발하면서 서버를 빌리는 기업은 임대료가 오를 때 비용 부담이 커지죠. AI 전문 클라우드 사업이 커지면서 미래 임대료는 서버 이용자의 비용뿐 아니라 사업자가 설비 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문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생겼습니다.

연산 시간을 가격에 따라 사고파는 시도는 AI 열풍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2009년 12월 남는 서버 용량에 고객이 입찰하는 스폿 서비스를 발표했어요. 고객이 지불할 수 있는 최고 가격을 제시하고 그 가격이 당시 스폿 가격보다 높으면 서버를 이용하는 방식이었죠. 스폿 가격이 고객이 제시한 한도를 넘으면 작업이 중단될 수 있었으니 영상 변환이나 데이터 처리처럼 시작과 종료 시각을 조정할 수 있는 작업에 적합했습니다. 고객은 서버를 저렴하게 빌릴 수 있는지와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했던 것이죠.

AWS는 2017년 11월 입찰가격 없이도 서버를 요청할 수 있게 하고 장기 수급 추세에 따라 요금을 서서히 조정하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개편 전후의 요금을 분석한 2019년 연구에서 한 요금이 유지되는 시간은 평균 85배 넘게 길어졌습니다. 요금이 바뀌는 간격이 길어지면서 서버를 빌리는 비용도 더 예측하기 쉬워진 것이죠. 비용을 얼마나 예측할 수 있는지도 공급자가 설계하는 서비스의 일부였습니다.

장기 임대계약으로는 비용과 사용할 용량을 미리 정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계약에는 미래에 사용할 서버를 실제로 확보하는 대가도 포함됩니다. 사업자가 사용료 하락 위험을 다른 투자자에게 넘기거나 이용자가 요금 상승에 대비하려면 서버를 직접 사용하지 않는 상대와도 임대료 변동 위험을 거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CME는 선물로 이런 거래를 표준화하려는 것이죠.

CME의 선물 계약은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H100과 B200을 구분하고 미국의 시간당 임대료를 기준으로 정산하도록 설계됐습니다. 정산가격은 실리콘데이터가 발표하는 온디맨드, 즉 장기 약정 없이 빌리는 서비스의 일별 가격 지수를 계약 월의 영업일에 걸쳐 평균해 산출합니다. CME는 월별 계약을 36개월 연속 상장할 계획이어서 거래가 시작되면 이용자와 사업자는 3년 범위에서 임대료 변동 위험을 관리할 수 있게 됩니다.

서버 이용자는 선물을 매수해 선물가격이 오를 때 발생하는 이익으로 임대료 상승 부담을 상쇄할 수 있습니다. 서버를 빌려주는 사업자는 선물을 매도해 선물가격이 내릴 때 발생하는 이익으로 임대료 하락에 따른 손실을 줄일 수 있고요. 두 경우 모두 실제 서버는 별도 계약으로 확보해야 합니다. 선물에서 이익이 나더라도 필요한 시각에 쓸 서버가 없다면 AI 작업은 실행할 수 없습니다. 임대료 변동 위험을 관리하는 계약으로 서버 용량까지 보장받을 수는 없는 것이죠.

사업자는 연산 시간을 재고로 쌓아 두었다가 팔 수도 없습니다. 서버 장비는 다음 달에도 남아 있지만 오늘 사용하지 않은 GPU 한 시간을 보관했다가 다음 달 고객에게 제공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팔지 못한 서비스 시간은 그대로 지나갑니다. 현재 저렴한 연산 시간을 사서 저장한 뒤 미래에 비싸게 팔아 가격 차이를 줄일 수 없으니 미래 임대료는 그때의 설비 가동 여력과 수요에 대한 판단에 따라 달라집니다.

GPU 한 시간이라는 공통 단위로 서비스를 묶을 때도 살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고객이 H100을 쓰더라도 서버의 메모리와 연결 속도, 설치 지역과 운영 안정성에 따라 제공받는 서비스가 달라집니다. 여러 GPU를 연결해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고객에게는 칩 사이의 데이터 이동도 중요하죠. 서로 다른 클라우드의 요금을 그대로 평균하면 품질과 계약 조건이 다른 서비스를 하나의 가격으로 묶게 됩니다.

실리콘데이터는 임대 기간과 클러스터 규모, 연결 방식 등의 차이를 조정해 지수를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어느 사업자의 요금을 얼마나 반영하고 어떤 차이를 조정하는지에 따라 이 지수가 대표하는 서비스의 범위도 정해집니다. 거래 당사자가 이 지수를 기준으로 현금을 정산한다면 지수 산출 방식은 단순히 통계를 작성하는 데 그치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수 산출 방식에 따라 거래 당사자의 이익과 손실이 직접 달라지기 때문이죠.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8월 공개 의견수렴에서 제시한 쟁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위원회는 비공개로 맺는 개별 계약이 많은 시장에서 가격과 거래량을 얼마나 관찰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영향력이 큰 사업자가 가격을 왜곡할 수 있는지, 표준화와 충분한 유동성을 갖췄는지에 대해서도 예비적인 의문을 제시했어요. 현금으로 정산할 때 기준이 되는 가격이 실제 서비스의 가치를 대표할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의견 제출은 이달 20일 마감됐습니다. CME는 당초 거래 개시일을 이달 5일로 예고했으나 현재 수정 공지에서는 규제 검토를 전제로 개시일을 미정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GPU 임대료를 금융상품으로 거래하겠다는 구상이 실제 시장으로 이어지려면 가격 기준과 거래 여건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서버 이용자가 지불하는 시간당 요금은 오르는데 선물 정산에 쓰는 지수가 내려간다면 이용자는 선물을 함께 보유해도 비용 부담을 줄이지 못합니다. 서버 사용권이 없는 계약으로 실제 서버 비용을 관리하려면 이용자의 임대료와 정산가격이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연산시장의 범위는 같은 칩을 쓰는 사업자가 얼마나 많은지만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연산시장의 범위는 하나의 가격 기준으로 변동 위험을 나눌 수 있는 서비스가 얼마나 넓어지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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